말바위 안내소에 드디어 도착이다. 이곳에서 할 일은 간단하다. 출입을 위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목에 거는 표찰을 받으면 된다. 구간 자체가 군사지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뭘 이런 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신청서는 위와 같은 양식으로 되어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는데 아마 이쪽 분야에서는 크게 변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주의 사항에 보면 금지된 행위를 하면 군의 무력 사용이 가능하다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 길 안에 들어가서도 자주 마주치는 문장이다. 약간 위화감은 있지만 자신이 동의하고 입장하는 것이니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좋겠다.


신청서를 작성하고나면 위와 같은 목에 거는 표찰을 받게 된다. 이 표찰은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데 무게감도 거의 없고 디자인도 나름 괜찮은 편이니 어색하게 생각하지 말고 걸고 다니면 된다. 길을 걷는 중에 수시로 만나게 되는 군인이나 경찰들이 이 표찰 여부를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한데 괜히 불필요한 행동으로 지적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구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 숙정문이다. 성곽의 4대문 중 북문에 해당한다고 한다. 북쪽은 예로부터 개방과는 거리가 먼 방향인데 역시 숙정문도 거의 개방이 되지 않은 상징적인 문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양 전체를 놓고 봐도 북대문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한양의 북대문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있지만 이곳 숙정문이 북대문이라는 게 대체적으로 인정 받는 견해인 모양이다. 게다가 위치에 이렇게 있으니 우리에게 낯선 곳임은 틀림없다.


비교적 최근에 복원이 이루어진 까닭에 오래된 느낌보다는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과거의 느낌까지 살려 복원을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복원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미술 쪽에서 이루어지는 복원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건축물도 과거 역사 느낌을 살린다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아무튼 숭례문인 남대문을 생각하면 이곳 숙정문은 꽤나 작은 문이다. 


성곽이 확연히 구분되는 구간이 보인다. 초기에 쌓은 돌과 이후 복원이나 보강을 통해 쌓은 구간이 이렇게 다르다. 세월이 지나면서 기술이 좋아졌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오래 전에 쌓은 성벽 역시 본연의 역할을 하는데는 무리가 없다는 점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말바위안내소를 나와 바로 마주치는 곳이 이곳 숙정문이고 이후로는 약간은 지루한(?) 걷기가 계속 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제한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같지만...


그 다음 마주치게되는 장소는 해발 293미터의 청운대다. 높이만 보면 북악산 성곽길은 그리 높지 않지만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경사가 가파른 편이어서 걷기가 아주 수월한 편은 아니다. 청운대도 사진촬영은 허용되는 곳인데 날이 맑다면 서울의 중심부를 멀리 볼 수 있는 조망이 제법 좋은 편에 속하는 장소다.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몇몇 장소 중의 하나인 1.21사태 소나무다. 나무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소나무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은 아닐까. 아무튼 당시의 총격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총탄 자리를 시멘트로 약간은 억지스럽게 보존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1.21사태 이후 향토예비군이 생겼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된 사실.


드디어 정상이다. 해발 342미터의 북악산 정상. 표지석에는 백악산이라 적혀 있는데 북악산과 같은 의미다. 이곳까지 오면서 좌우로 계속 군인들과 경찰들을 마주 치게 된다. 마음 편하게 걷기는 조금 불편한 길인데 반대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 편하게 군 생활할 곳은 아닐테니 추운데 고생한다고 격려라도 해주면 어떨까


정상 이후는 창의문에 이르기까지 계속 내리막이다. 게다가 이 내리막이 만만치가 않다. 오르막에 힘을 많이 들였다면 바로 내려가지 말고 충분히 쉬었다 가도록 하자. 내려가는 동안 쉴 수 있는 장소는 한 곳뿐이니 미리 체력을 비축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계단의 간격이 약간 애매해서 한발씩 성큼성큼 내딛다가는 넘어질 위험도 있으니 조심하자.


한참을 걷다 보면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성곽이 죽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인왕산길 구간이다. 인왕산길은 예전에 적었던 글에 어느 정도 소개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인왕산길을 걸을 때 이 부분은 생략해야 하나 아니면 다시 걸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당시는 겨울이어서 눈 덮인 풍경을 담았으니 이번에는 봄의 느낌으로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좀 더 커서 아마 다시 가게 될 것 같은데 이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고 걷게 될 예정이다.

이렇게 한양도성길 중 첫 번째 길인 북악산길 걷기를 마쳤다. 사실 걷기라기보다는 등산에 조금 더 가까운 모양새다. 4개의 성곽길을 모두 걷고 나면 전체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겠지만 북악산길은 초행자가 바로 걷기에는 약간은 부담스럽다는 점. 적어도 신발만큼은 발에 편한 것을 신고 가는 것이 좋겠다. 물론 등산화가 가장 좋은 선택이 되겠다.


Panasonic LX-7


작년에 북한산 둘레길을 완주한 이후 걷기가 잠시 주춤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새해 들어서도 다시 걷기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강제력'이 작용한 것인지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블로그 기자단에 선발이 되면서 원고 작성을 위해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걸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어디를 돌아볼까 생각을 하다가 이전에 후배와 성균관대 후문 쪽으로 걸었던 성곽길이 생각이 나 이 코스를 네 번에 걸쳐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이 길은 한양도성길로도 불리고 한양성곽길, 서울도성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공식적으로는 문화재청이 '서울 한양도성길'로 이름짓고 있고 이곳에서는 한양도성길로 부르기로 하겠다. 이번 글은 사진이 많아 두 개의 글로 나누어 올릴 생각이다. 그리고 글자 폰트도 조금 키워보았다.

한양도성길의 시작점으로 택한 것은 북악산길이다. 북악산길도 3곳은 진입로가 있는데 내가 간 곳은 지하철 5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지하철 출구에서 한 10여 분 정도 직진을 하면 되는데 언덕으로 올라설 즈음 건널목 건너로 진입로가 보인다. 올라 오는 도중에 간송미술관으로 가는 길과 나뉘기도 한다.


안내표지판을 뒤로 하고 걷기 시작하면 평탄하게 잘 포장된 길이 이어진다. 초입부터 시작된 성곽이 이제 이 길을 마무리하는 지점까지 죽 이어지게 된다. 성곽을 쌓은 돌의 재질이 위치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서 걷는 것도 좋겠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성벽에 기댄 채 말라 붙은 가지가 아직 오지 않은 봄을 탓하듯이 그리고 지난 겨울의 흔적을 기억하듯이 이제는 따스해진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쬐고 있었다. 


제법 넓어지는 구간이 나온다. 와룡공원과 이어지는 곳인데 지역 주민들의 휴게 공간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의자나 운동 기구들 같은 것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다. 미리 말하지만 본격적인 성곽길 걷기를 시작하면 마땅히 쉴 곳이 없으니 미리 충분한 휴식과 에너지 보충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고보니 우리 역사 유적 찾기도 하겠다고 야심찬 선언을 한 지도 제법 오래됐다. 한동안 그 작업도 거의 못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이곳이 사적 10호다. 보통 여행을 다닐 때 안내문 읽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깐 멈춰서서 안내문을 보면 자신이 어디에 그리고 왜 왔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고 무엇에 중점을 두고 여행의 방향을 잡아야할지 분명해지기 때문에 안내문은 꼭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렇게 보면 마치 조선의 어느 시대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모습은 다 사라졌지만 성벽은 남아 그 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자리에도 어느 인물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텐데 낯선 이는 그 사연을 알 수 없고 그저 차가운 벽돌에 기댄 햇살만 바라볼 뿐이다.


북악산길의 시작점인 말바위안내소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법 멀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시작하는 북악산길의 길이보다 그 전에 걸어야 할 거리가 훨씬 길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걷기를 권한다. 날이 따뜻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겨울인지라 오가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 조용히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여러 국가의 수도 역할을 했던 서울에 당연히 유적이 많아야 함에도 우리 주변에서 과거의 유적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일제강점기와 전란을 거치면서 많이 소실된 부분도 있겠지만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사라진 유적들도 꽤 많지 않을까?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발전을 거부하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키워나가는 주춧돌이 되는 것인데.. 아쉬운 부분이다.


한양도성길 중 북악산길은 입장 제한이 있다. 지역 자체가 청와대에 인접해 있고 1.21사태라는 분단 시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기 때문이다. 이곳을 걷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안내판에 써 있는대로 준비만 하면 입장하는데 전혀 무리는 없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다만 입장 시간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가급적 오전에 집을 나서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표지석이다. 이 돌을 기준으로 성북구와 종로구가 나뉘는데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런 표지석들이 곳곳에 있어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현재 위치를 묻곤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이야 스마트폰만 켜면 아주 자세한 위치가 나오지만 말이다. 때로는 너무 자세한 정보는 정신에 부담이 가기도 하는데 오히려 이런 표지석이 정감있고 아날로그적이다.


이제 성곽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끼인지 풀인지 모를 식물들이 세월을 간직한채 성벽에 옹기종기 붙어 있다. 지난 겨울을 버틴 힘으로 이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역시 다르지 않아 슬픔과 기쁨은 늘 그 자리를 바꿔가며 우리에게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교훈을 준다. 힘들다고 좌절하지 말고 기쁘다고 교만하지 말 일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제법 높이가 만만치 않다. 전란 시대에는 이 성벽을 지키느냐 오르느냐에 한 국가의 운명이 정해졌을텐데 오르는 자나 지키는 자나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맞부딪힌 장소가 바로 이곳은 아니었을까? 자세히보면 아랫부분의 돌과 윗부분의 돌의 재질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처음 성곽이 만들어질 때의 상태를 보존하고 있느냐 아니면 이후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한참을 걸었지만 아직 안내소는 보이지 않고 안내문만 나타난다. 위에도 적었지만 실제로 안내소를 지나 걷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창의문 쪽에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면 바로 북악산 길부터 길이 시작되지만 말바위 안내소로 오는 길을 택했다면 이렇게 먼저 걸어야할 길이 있으니 경로 선택을 할 때 참고하면 되겠다.


이제 얼마 뒤면 이곳은 개나리가 펼치는 노란색의 물결로 뒤덮이겠지만 아직은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남부지방에는 봄을 알리는 징조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은 여전히 겨울이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인지라 경칩이 지날 무렵이 오면 지난 겨울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리라.


오래된 돌과 다음 세대의 돌 그리고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바위들과 그 사이의 나무들이 어루어진 풍경에 한참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장소. 시간과 세월, 흔적과 기억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잘 닦인 길은 이제 거의 보기 힘들어졌고 좁은 길과 성벽 그리고 나무들을 벗삼아 걷는 구간이다. 성곽길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어서 자칫 산책로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북악산길은 그 이름 그대로 북악산 정상을 통과하는 길이다. 물론 등산 장비를 착용하고 걸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대략 5km정도의 거리를 걸어야하기 때문에 등산화 정도는 신고 가는 것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것 같다. (2편에서 계속)








나는 아직 지리산에 가본 적이 없다. 애초에 산행이라는 것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데, 아마도 군 시절 산악 구보를 통해 지겨우리만큼 산을 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수 많은 산행 서적이 나와도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이혜영의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일단 제목부터 눈에 들어온다.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둘레를 걷는다'는 것이 제법 신선해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책을 손에 드니 제법 묵직하다. 사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인쇄 품질을 고려해 종이를 쓰다보니 책이 무거워진 것 같다. 몇 장을 들춰보니 흔히 볼 수 있는 여행 서적과 다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마치 오래 전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같은 느낌이랄까 글씨들이 빼곡하게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니 여행 서적이면 좀 여유있게 편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읽어보기로 했고 얼마 후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월간지와 일간지 기자를 거친 까닭인지 문체가 참 정갈하다. 반면 한편에서 생각하면 어디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어 독자는 저자의 생각에 푹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문학 전공자답게 유려한 문체와 맛깔스러운 문장을 적어 가면서도 기자의 직업 정신이 몸에 익숙해서인지 배경 자료(지리, 설화, 교통편 등)가 제법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보통 요즘의 여행서들이 시각적인 데에 치중하거나 젊은 독자들을 끌기 위해 다소 파격적인 내용의 글을 적어나가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정통 여행 서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통 여행 서적은 다분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 지루함을 해소시키는 것은 온전히 저자의 필력에 달려 있는데 이혜영 씨는 그런 면에서 작가의 자질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어떤 지역을 안내하는 여행 도우미라는 느낌보다는 저자가 직접 그 길을 걷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담고 저자의 느낌을 가감없이 적어 내려간 기행문에 가까운 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요즘은 오히려 이런 류의 책이 보다 독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분명히 여행 서적을 보기는 했는 데 책을 덮고 나면 뭘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책들이 쏟아지는 요즘이니 말이다.

저자는 한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포인트' 장소를 지정해 그곳에 가보기를 권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 자신이 느꼈건 그 감정을 독자들과 공유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왜 지리산을 찾아 그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둘레길을 걸었을까? 저자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주변과의 넉넉한 교감을 권장하는,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지리산길 걷기는 여행자와 여행자의 관계를 평등하게 조작했다."는 점이 아닐까.

산을 오르면 누군가는 위에 있고 누군가는 아래에 있지만 길을 걸으면 우리는 늘 같은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책을 읽었다. 이헤영 작가의 감각을 다른 책을 통해 또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끝으로 책 뒷 장에 고이 담겨 있는 손수건은 저자의 유쾌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같다. 땀을 흘리며 자기가 걸어본 길을 똑같이 걸어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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