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넘쳐난다. 특히나 인터넷 언론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생기면서 소위 ‘기자’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흔히 말하는 조중동 여기에 한경이나 매경 정도를 넣어서 4대 중앙일간지라는 이름을 붙였고 세간에서도 이 정도까지를 ‘언론’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기자다. 기자의 원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갈피를 잡기 어려워졌다. 웬만한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ㅇㅇㅇ기자 라고 글 아래 토를 달아뒀다. 그래도 기자가 쓴 글인데..하고 읽어보면 가관인 글들이 태반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명함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나 기자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과거와 같은 ‘언론의 사명’이나 ‘기자의식’ 같은 거창한 단어들은 이미 잊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디서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 해외사이트 구석에 소개된 글들, 보도자료의 오타조차 수정하지 않은 글들, 다른 기사들을 적당한 짜깁기해서 마치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양 올려놓은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기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골치 아픈 것은 업체와 에이전시다. 한 업체 홍보담당자는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물건’을 요구하는 ‘기자’들 통에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담당자들 사에서 ‘요주의’ 인물로 꼽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물건을 보내주지 않으면 기사가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조금 인지도라도 있으면 그 정도는 더하다. 홍보팀 입장에서는 얼마나 노출이 이루어졌느냐가 곧 성과인데 물건을 보내줘야 보도자료라도 써 주니 답답한 일이다.

내가 알던 모 편집장은 아예 대놓고 업체에 전화를 해서 제품을 요구한다. “제품 지원을 안 해주면 좀 곤란한데…”라며 말꼬리를 흐리지만 의미는 명확하다. 독자이벤트용으로 나간다며 요구하는 제품들이 어느 순간 개인용으로 돌아서버리는 예도 비일비재하다. 업체에서 이것을 모를 리 없지만 ‘울며 겨자 먹기’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업체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제품 발표회나 기자간담회를 진행할 때면 꼭 유명한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입구에서부터 선물 공세를 해댄다. 밥 잘 먹고 선물도 챙긴 ‘기자’들이 책상 앞에 앉아 업체의 문제점을 적어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업체와 언론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타협은 워낙 확고한 전통이 되어 있어서 누군가 타파라도 해볼 양이면 이단아 취급을 받는다.

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한 기업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권력은 기자나 데스크가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써야 하는 것임에도 마치 자신이 권력의 수혜자라도 된 것처럼 휘두르고 있으니 착각도 유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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