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하윤의 '메모광'을 읽어보면 참 사람의 심리를 딱 부러지게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에도 소위 글발이 오르는 것은 잠들기 전의 찰라의 몇 초간 혹은 문득 잠에서 깨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이다.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그 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상념의 조각들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뭔가가 아쉬울 때 더 절실해진다. 바쁜 출근길에 옴싹달싹할 여지도 없는 순간에 머리를 가득 매우는 시나리오들. '아 자리에 앉게 되면 이것들을 기록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금세 잊고마니 아쉬움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하윤의 글의 일부를 발췌해보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흔히 내 머리에 떠오르는 즉흥적인 시문(詩文), 밝은 날에 실천하고 싶은 이상안(理想案)의 가지가지, 나는 이런 것들을 망각의 세계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내 머리맡에는 원고지와 연필이 상비되어 있어, 간단한 것이면 어둠 속에서도 능히 적어 둘 수가 있다...


특히 이 문장은 와 닿는 구석이 많다. 나도 언제고 펜을 들어 즉흥적인 감상을 옮기기로 하고 위와 같은 실천방안을 몇 차례 강구해봤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습관이라는 것은 기실 어느 정도의 강제력이 작용해야 비로소 몸에 익숙해지는 것이지 '그래? 이건 어떨까?"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해서는 안 되지 싶다.

이동 중에도 내 양복 안주머니에는 늘 만년필 한 자루와 두 개의 펜이 있고 손만 뻗치면 가방 안에서 노트를 꺼낼 수 있음에도 쉽사리 상념의 조각들을 메모하지 못하는 것은 '사정이 이러해서..쉽지가 않았다..'라는 변명으로 넘길 구석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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