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상 살아가는 동안 정말 마음을 비우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아마 그런 상황이라면 대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한 경우가 아닐까.. 이미 포기한 상태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본전이니 마음을 비우기가 쉽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무엇인가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마음을 비우기란 쉽지가 않다. 이렇게 마음은 소유욕, 욕심과 밀접하다.

손에 쥔 것을 놓지 않고서는 다른 것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두 손 가득히 무언가를 잡고 있으면서 또 다른 것을 잡으려 하는 것은 다리 위에서 자신의 그림자가 물고 있는 고기를 얻기 위해 짖어버리는 개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우리네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소유욕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리고 때로는 위의 개의 우화처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또 얻으려 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마음을 비워야 얻는다는 것. 손에 쥔 것을 놓아야 얻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무한한 공포를 느끼고 살아간다. 약하디 약한 것이 인간이다..권력을 원하고 재력을 원하고 사랑을 원하고.. 세상의 어떤 척도가 되는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무엇인가 없음에 대한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많은 철학자들이 익히 이야기한 것처럼.. 분리에 대한 불안. 참 적당한 해석이다.

결국..마음이 공허한 것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무엇인가를 얻고 추구한다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비어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집착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그 채움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마음이 허전하면 허전할 수록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이 커 가고 사람에 대한 집착이 커 간다. 그리고 그 집착은 욕심이 되고 때로는 폭력이 된다. 무엇인가 없다는 것은 이렇게 인간을 힘에 의존하게 만든다.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돈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결국 공허함에서 비롯된다.

권력을 추구하는 핑계로 국민과 민족을 내세우고 돈을 추구하는 핑계로 행복과 생활을 내세우고 성욕을 채우기 위한 핑계로 사랑을 내세우면서 정작 추구해야 할 본질들은 저 멀리로 던져 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애초에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잊게 된다. 수단이 목적이 된다.

허나 정작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비워야 하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조차 느끼지도 못하면서 다른 것들을 향해 주먹 쥔 손을 뻗는 그런 삶을 우리네 인간들은 이제껏 반복해오고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그럼에도 먼지 한 톨조차 놓지 않으려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다.




이책은 도발적이다. 띠지에 적힌 카피는 "돈이 모이는 곳에서 예술은 태어나고 발전한다"이다. 흔히 예술가들은 가난하다고 하는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이책은 기존의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른 면에서 예술작품을 바라본다.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천박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화가들의 작품이 고가에 판매되야 화가들도 먹고 살 수가 있고 그래야 또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시선이다. 일응 타당한 이야기다.

꽤나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인 리자 게라드디니의 초상이라는 게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p.22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돈을 받고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으면 모나리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마네의 사회비판적인 시각이 없었으면 풀밭 위의 식사나 올랭피아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예술=돈의 공식을 적절히 활용한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를 돈만 밝히는 속물이라고 비판만 할 수 있을까? 초야에 묻혀 있는 예술품들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은 다름 아닌 경매장이다. 이율배반적으로 들리지만 이렇게 예술은 시대와 돈 그리고 권력과 떼기 어려운 관계인 셈이다.


누드에 대한 위선, 그에 대한 거침없는 반격. 마네의 올랭피아. p99

또한 예술가들의 권력, 사회통념과의 대결 구도를 그린다. 돈과 권력...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세력들과 때로는 어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이제까지의 역사를 만들어온 장본인이다. 이책에서는 이 두 가지 구조를 큰 틀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물론 권력과 사회통념에 맞서 싸우는 일종의 투쟁에 대한 언급은 많지는 않다. 과거 TV프로그램에서 다루어졌던 내용이다보니 아무래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만한 주제와 이야기 위주로 풀어갔기 때문이리라..


 워홀의 오렌지 마릴린. 이 작품의 가격은? 145억 원이다. p 157

책은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보면 시대순이지만 꼼꼼하게 다시 들여다보면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진행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파리로 다시 뉴욕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 넘어 오는 이야기의 진행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따른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시대에 따른 권력의 이동, 경제의 이동에 대한 흐름이라 보는 것이 더 어울린다.


시대에 대한 교묘한 비판.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p121

그 흐름 속에서 흐름에 동화하며 혹은 흐름에 역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던 예술가들을 통해 예술이라는 것의 사회적인 면을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책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미술사와 작가들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회상과의 긴밀한 연관을 다루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읽기가 수월하다. 무엇보다 기존에 잘 모르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는 점이 매력적이고 신선하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명작스캔들과의 비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1.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요즘 블로그에 대한 논의가 제법 활발하고 얼마 전에도 블로그의 의미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예전에 제가 썼던 글 중에 블로그를 하나의 권력으로 묘사한 글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2006년 9월에 작성한 글이니 거의 2년이 되어 가는 글인데 당시 저는 블로그에 대해 대안 미디어로서의 의미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기성 언론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당시와 지금의 블로그의 입지는 제법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2년 전에 지적한 콘텐츠의 객관성과 여론 주도적 기능은 당시에 비해 파격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편에 걸쳐서 살펴보게 될 이 포스팅은 2년전 작성한 글에 이은 속편 격으로 우선 이번 글에서는 블로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합니다.

2. 블로거는 아무나 될 수 있다

블로그를 쓰는 사람을 블로거라고 한다. Web과 Log가 합쳐진 이 신조어는 이제는 당당한 고유 명사로 자리잡고 있는데 예전에 홈페이지를 운영하던 사람을 부르던 말이 딱히 없었던 것에 비하면 블로거라는 단어가 생긴 것만으로도 블로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 준다. 블로거가 되는 것은 정말 쉽다. 자기가 가입해 있는 포털에서 공짜로 만들어준다. 포털에 종속되는 것 같은 느낌이 싫으면 텍스트큐브와 같은 설치형 블로그를 선택하면 된다.

요즘에는 인터넷 서점에서도 블로그를 만들어주니 이도 저도 싫으면 서점에 블로그를 만들 수도 있다. 즉 블로거란 뭔가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자신인 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잠재적인 블로거다. 적어도 포털에서 제공하는 이메일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언제고 블로그 설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3. 그렇다면 왜 블로그를 만드는가?

블로그의 목적에 대해서는 과거와 지금의 논의의 기본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어나가는 공간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특히나 요즘에는 부가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는 수익 창출 공간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는데 이 수익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하게 검토할 예정이다. 아무튼 한번쯤 블로그를 만들 것을 고민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외눈박이 원숭이들이 사는 섬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즉 “남들이 다하는 데 나만 안 할 수는 없지 않느냐”인 것이다.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 블로그를 만든다기 보다는 요즘 세상에서 블로그 하나 없는 “왕따”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싸이월드나 네이버, 다음 등의 블로그 생성자 대비 활동자 수를 비교한 자료가 있다면 어느 정도 검증을 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의 특성상 만들어 놓고 몇 년을 글 하나도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 만들어 놓고 보자는 심리도 제법 있을 것이다.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는 블로거들이 생각하는 그리고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블로그가 하나의 가치체계나 1인 미디어로서 혹은 여론형성을 하는 주도적인 위치에 서기에는 실질적인 활동 인구가 적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4. 내 글이 여론을 주도한다?

블로그의 1인 미디어로서의 기능에 대해서 나 역시 제법 낙관적인 전망을 한 적이 있는데 실제 현실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아고라에서 볼 수 있었던 예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것이 아닐까? 대다수의 국민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기성 언론조차도 수 많은 기사들을 내보내지만 그 중에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웹 상에 올린 포스팅만으로 국민의 의사를 결정하고 리딩해나간다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다. 무엇보다 그럴 여건이 아직 안 되었는데 기술적인 발달이 좀 더 이루어지면 이 상황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현재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홈네트워킹을 통해 인터넷의 사용이 PC에서만이 아닌 일상 자체로 확대되면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도 포스팅을 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현재는 블로그를 사용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한 공간 즉 블로고스피어 내부에서의 여론 형성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이미 파워블로거로 손 꼽히는 블로거들의 글은 동일 관심 집단 혹은 근접 집단에 의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블로그의 진화는 블로거에 의해서

따라서 블로그가 혹은 블로거가 전반적인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선 기술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 휴대폰의 발달은 그것을 좀 더 앞당길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한 가지 엉뚱한 상상을 한다면 블로그라는 존재가 만약 기성 권력에 의해서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겨질 경우 기술의 발달은 조금 늦어질 여지도 있다. 이번 아고라 파동에 이은 광고주 불매 운동, 촛불집회 등에 대해 결국 포털이 권력의 힘에 의해 제지를 받았던 것은 비근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권력자들은 일반 국민에게서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거북해한다. 예전에는 웹 상에서 네티즌들이 뭐라 하건 별 신경을 안 썼지만 서서히 그 여파가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는 모양에까지 이르자 서둘러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최근의 블로그는 한 단계 진화하는 양상을 보인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최근의 블로그와 블로거들의 변화의 양상은 워낙 가파른 모양을 하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궁극적인 블로그의 진보 형태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오프라인의 자신의 인격을 대변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이 자연스럽게 해소가 될 것이고 블로그에 사용하는 아이디가 그 사람의 인격 그 자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블로그를 폐쇄하는 온라인 자살(지금 이 시간에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을 통해 또 다른 인격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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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적어 나갈 글

(2) 메타 블로그,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3) 위협받는 블로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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