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은 책은 '철학교사 안광복의 키워드 인문학'이라는 조금은 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21세기의 첨단 시대인 지금,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함을 상징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철학과 고전 등이 대학입시나 고교입시에서 논술이나 면접 등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단어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총 50개의 개별 키워드와 100권의 책이 이 책의 뼈대가 되고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밝히고 있듯이 '2%의 물음', 생활인의 인문학이 이 책을 이루는 커다란 흐름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인문학이라는 다소 진부한 주제들을 우리의 현실과 맞닥뜨려 다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식이 책 안에 머물고 있으면 생기가 없습니다. 그 지식을 현실로 끌어내어 우리의 실생활 속에 던져두었을 때야 비로소 지식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제법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주제 하나를 잡고 그 안에 소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주제들은 3-5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기에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각장의 말미에는 소주제의 글을 쓰는데 참고한 서적들에 대한 간략한 서평을 달아두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런 친절함 덕분에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게 됩니다.

철학박사이자 고교 교사인 저자는 왜 하필 인문학이라는 주제를 잡았을까요? 인문학은 오늘날 우리의 사상과 가치의 바탕이 된 고전입니다. 과거의 고전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의 문화는 존재하기 어려웠겠죠.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런 과거의 영광을 진부하다거나 낡았다는 핑계로 제쳐둡니다. 서가를 장식하기 위해 몇 권의 고전들을 꽂아둘 뿐이죠. 그렇지만 인문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니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0개의 키워드를 아우르는 각 장의 제목을 보면 그런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Chapter 1 생활 속의 'ism'들
Chapter 2 선전, 선동, 그리고 진실
Chapter 3 의ㆍ식ㆍ주_생활의 뿌리
Chapter 4 과학, 종교, 교육_인류를 떠받치는 세 기둥
Chapter 5 왕따, 갈등, 그리고 전쟁_세상의 '참 평화'를 지키려면
Chapter 6 자본주의 생존학_정글에서 살아남기
Chapter 7 Miscellaneous_'기타' 생각거리들

인문학에 대해 보통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많이 걷어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각 장의 세부 주제 즉 키워드로 들어가면 좀 더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장 경우

Keyword 17 옷의 철학 패션, 혁명을 이끌다
Keyword 18 한식의 세계화 먹거리에 담긴 인문 정신
Keyword 19 공장식 농장 공짜는 없다! 값싼 음식의 비밀
Keyword 20 행정복합도시 성장과 균형, 도시계획의 이중주
Keyword 21 가족 해체 ‘알파걸’이 우리 미래를 지켜 준다고?
Keyword 22 소셜 네트워크 우리가 외롭지 않으려면
Keyword 23 아파트 대한민국 ‘리모델링’은 ‘아파트 허물기’부터

이런 식으로 각각의 키워드에 따른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제목만 봐서는 과연 인문학을 다루고 있는 책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소주제 그러니까 키워드 하나하나마다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가 우리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책 속에만 등장하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겪는 바로 오늘입니다. 키워드 36이 다루고 있는 왕따에 대해 저자는 왕따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책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구분이 차별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부분을 상세히 언급하면서 이와 같은 차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축구 선수를 뽑을 때 달리기 실력의 차이는 결코 차별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따라 선수를 가릴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처럼 정당하지 못한 차이로 차별의 벽을 쌓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중략)..이런 우리 모습에 3구역을 멸시하는 2구역 주민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199면에서 발췌
이런 식으로 50개의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와 100권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독자는 자연스레 저자가 글에서 언급한 다른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희망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 광범위한 주제를 담으려다보니 각각의 주제나 관련 서적에 대한 깊이가 깊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마다 몇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란데 고작 4-5페이지에 그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은 도화선이 되는 역할이 강합니다. 독자들이 저자의 글을 읽고 한걸음 나아가 원저를 읽고 더 나아가 독자 스스로의 키워드를 만들어주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습니다.

각 장의 말미에 자리잡은 서평란에는 바탕이 된 100권의 책들은 저자와 출판사까지 명시해주고 있어 서점을 두리번거려야 하는 분주함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자세히 적을 수 없었던 내용도 추가적으로 담고 있어 도서의 선정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언급한 책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생각에 뒷받침이 된 책들입니다.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들도 출판사와 역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읽고 싶은 책을 하나 정하면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같이 놓고 비교해보며 자신이 좀 더 읽기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이 독자들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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