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2010년 오늘 하나의 삶의 길을 접고 돌아왔으니 특별하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해보이는 그런 날이 오늘이다. 벌써 그날로부터 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게 참 믿기지 않을 정도다. 

어떤 일을 겪을 때 그 순간에는 세상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덧없어 보이기도 하고 혹은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때를 돌아보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네'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말 큰일이 일어나는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사실 살아가면서 손꼽을 정도다. 굳이 꼽아보자면 출생과 죽음 정도일까? 하지만 그 출생과 죽음이라는 것도 큰틀 안에서는 흐름 속의 일부이기에 특별한 것이 되지는 못한다.

살다보면 삶의 반전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주어지고 그 기회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남은 삶이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변하게 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인생역전(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생각에 묻혀 깨닫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 무한함이 0으로의 무한함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떤 특정한 일을 겪고나서야 혹은 특정한 사람을 만나고나서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허구라는 말이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다. 의미부여를 어디에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예전에는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 최면을 걸기도 했었는데 원래 모습보다 과장된 이미지를 부여했던 탓에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그것이 원래의 모습임에도 쉽게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곤 했다. 결국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을 구분한다는 것이 스스로 무언가를 합리화하기 위한 교묘한 생각의 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예로 들어보면 '당신이 이럴 줄 몰랐다"는 말은 가장 흔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상대는 가만있는데 자기나름의 의미를 상대에게 부여한 경우다. 게다가 이 의미부여에 특별하다는 생각을 덧붙이면 '-의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나만의 당신이.."가 되어버리면 일은 더 복잡해진다. '당신은 원래 그렇다'는 말 역시 다름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처음의 문장을 되짚어보면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내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고 그 의미를 크게 부풀렸을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나 자신에게 그리고 대외적으로 설득하려했으니 거품 속에 감추어진 미약한 본질을 덮기 위해 끊임없이 거품을 더 만들어 내는 의미없는 일상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비단 어떤 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저 사람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을 바칠 인물. 이런 식의 자기최면(혹은 집단최면)과 거품덮기에만 급급하다면 그리고 상대방 역시 그런 거품으로 덮여있다면 그 거품이 꺼지고난 후에 마주치는 서로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다 드러내놓은 상태에서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무튼 결국 중요한 것은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사하고 그때그때를 모면하기 위한 변명으로 가득찬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컴퓨터처럼 0과 1로 그 생각을 구분지을 수 없기 때문에 0과 1의 사이에 정말 셀 수 없을만큼의 선택과 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0부터 1까지도 가지 못할 정도의 일로 고민 속에 빠져 있거나 감정을 소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 심각하지 말자는 작은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인생에 특별한 일이라거나 평범한 일이라거나 하는 식의 구별은 별 소용이 없다는 것.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는 아닐지라도 무언가에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처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오늘 내게 던져진 이야깃거리다.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는 90년대 학번이었던 내게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분위기에 휩쓸리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재에 대한 절망.. 그런 여러 감정들 속에서 고시라는 당시는 어쩌면 당연한(그리고 현실을 외면하는) 선택을 해야했던 내게 이 노래는 가장 아픈 곳을 찌르고 또 찔렀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이곡을 들었을 때 여전히 그 가사 속의 모든 상황들이 그대로 나에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당시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내게 던져진 질문은 같았고 나는 여전히 머뭇거리며 적당한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 어쩌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바닥에 깔아두고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것을 나는 이리저리 외면하고 모른 척했다.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그 순간만 넘기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그 어려움만 극복된다면 무엇이든 할 거라고 다짐하지만 막상 그 어려움을 넘기고 나면 다시 주저 앉아 버리고마는 나태함과 안일함.. 

그리고 지금 90년대 학교 도서관의 내 모습으로 현재의 나를 다시 일치시키려 한다. 감정이나 의지나 노력, 사랑같은 것들은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줄 수가 없기에 나는 이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단어들로 가득 차 있는 법전과 법서를 펼치고 앉아 바깥에서 들려오는 시대의 흐름에 귀를 막고 가끔 마주치게 되는 순진한 인연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하루 끼니 걱정을 하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은 내게 있어 가장 큰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마주쳐야 했고..이걸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저 차일피일 시간만 미뤄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 미룸이 얼마나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미치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 사실과 맞부딪히기가 너무 싫었는데..이젠 뭐랄까.. 참 초연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그 녀석을 다시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90년대의 어느 날. 최루탄 냄새 매캐한 도서관에 앉아 선배들,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들, 수줍은 얼굴로 지나치며 눈을 내리감던 첫사랑 그녀의 모습, 붕어빵 한개로 하루를 버티며 스스로 대단해했던 어느 유치한 날들, 지하철 역 아래 소주집에서 못 마시는 술을 마시며 시대를 이야기하던 나날들..그 모든 풍경들이 문득 새롭게 컬러가 업혀지며 내눈 앞에 다시 선명하게 보인다. 같은 기억도 어떻게 되돌리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지금의 나는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아쉬운 감정을 느끼지 않고 서운하다거나 섭섭하다거나 하는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것이 가족이건 혹은 다른 누구건 그들이 내삶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만큼 내가 살아온 날들 역시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루지 못해 안타까웠던 과거 역시 내 삶이었다.

과거의 기억과 과거의 사람들 모두 현재의 나를 만들어온 존재들이니까. 그리고 이젠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편하게 과거를 마주할 수 있고 말을 건넬 수 있다.

다시.. 시간을 그렇게 되돌린다. 모든 기억을 안고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1.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 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2.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멀쩡하게 보이는 것 같은 공간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애초에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왜곡되기도 한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엇갈려 바라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느 것이 맞느냐... 

애초에 어느 것도 맞고 틀리고 가치를 개입시킬 문제가 아니다.

어느 것도 원천적으로는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