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농원(www.sanghafarm.co.kr)은 매일유업이 투자에 참여한 곳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라면 한 번쯤을 들어봤을 상하목장 제품들을 생산하는 곳이다. 전북 고창에 자리잡고 있는데 고창 안에서도 제법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이곳의 명칭에 대해서는 상하농원, 상하목장, 상하농장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상하농원 공식 홈페이지에는 상하농원으로 매일유업의 페이지로 들어가면 상하목장(http://sanghafarm.maeil.com/)으로 되어 있어 다소 헷갈릴 수도 있지만 '상하'라는 지명을 사용한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면 되지 싶다. 상하농원의 주소는 지명 그대로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상하농원길 11-23'이다.

농원 내부는 생각보다 크지는 않은 편이다. 개방되지 않은 시설들을 생각하면 좀 더 클 수 있지만 삼양목장처럼 대규모 목장이라기보다는 생산시설과 음식점,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동선이 한정적이어서 꼼꼼하게 돌아보고 식사를 하더라도 3시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지 싶다. 건물들이 뭔가 예스러운 느낌이 있고 구역별로 잘 정리되어 있고 방목되고 있는 동물들도 상당히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보기에 좋은 곳이다.

이제 제법 걷는 것이 익숙해진 하람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궁금한 시기인지라 보는 것마다 만져보려고 안간힘이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가능하면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깨닫고 그것을 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생각이 부부의 공통된 생각인지라 어디를 가게 되더라도 아이가 자기 발로 걸어서 돌아다녀보도록 하는 편인데 이곳은 그런 여건이 잘 되어 있다.

한창 자랄 시기인지라 먹는 것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녀석이다. 인터넷을 보면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기에 꽤나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 같은데 하람이 데리고 다니면서 아직까지 큰 일(?)은 없었다. 물론 요즘 들어 소리지르는 일이 부쩍 늘어서 커피숍 같은 곳에서 소리를 지를 양이면 얼른 안고 나오지만 식당 같은 곳은 아이가 관심을 가질 것들이 많고 무엇보다 먹을 것이 있어서인지 제법 얌전한 편이다.

 

글을 읽을리는 당연히 없지만 그림이 관심을 끌었나보다. 세상의 정보들을 엄청난 속도로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의 머리는 얼마나 부하가 많이 걸릴까 싶다.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많이 오는 곳이어서 그런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진 안내판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이런 사소한 부분에 대한 배려를 찾기가 어려운 편이다. 유아나 어린이들이 자주 찾는 동물원이나 테마파크 등에 가도 주관람층을 위한 눈높이 안내보다는 보호자를 위한 안내판(많은 부분이 금지라는 단어가 들어간)이 많은 것이 보통이니 말이다.

목장의 동물들은 사실 하람이 정도의 시선보다 아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은 대부분 내려다봐야 하는 모양새인데 밖에 나가면 가능하면 무릎을 굽히고 아이의 시선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직접 보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작고 아담한 동네길도 한없이 크고 넓게만 느껴졌으니 말이다. 이 조그만 아이에게 세상은 엄청나게 크고 많은 소리들이 들리고 그럴텐데 어른의 시각이나 생각으로 아이의 느낌을 방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참 오랜만에 블로그에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 블로그의 모든 사진은 SLR이나 DSLR을 이용해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런 습관아닌 습관이 있다보니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카메라 자체를 만질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었다. 이번 글도  DSLR로 찍은 사진들만 올리다보니 사진의 양이 꽤나 적은 편이다. 이제는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과도 적당한 타협을 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어디를 가든 나 혼자 이동할 기회는 예전에 비하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줄었고 거의 대부분의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기 때문이다.

 

 

 

Nikon D700, AF 35mm f/2.0

 

한창 북한산둘레길을 걷고 있을 때 두 번정도 산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북한산이고 또 한 번은 사패산이다. 둘중 사패산을 먼저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겨울 둘레길을 걸을 때 먼 발치에서 바라본 사패산의 느낌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사패산을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정상에 오르는 길도 몇 가지나 된다. 등산 초보인 내 입장에서는 그래도 수월한 길이 어디일까 찾아보다가 의정부 회룡역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정하고 집을 나섰다.

사패산이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당시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시집을 갈 때 하사한 산이라 하여 賜牌山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이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은 갓바위산, 삿갓산이었다고 한다. 북한산도 삼각산이라는 순 우리말 이름이 있는 것처럼 사패산도 이전의 이름을 찾아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지하철 1호선 회룡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회룡사'로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된다. 길을 조금 걷다보니 익숙한 표지판이 보인다. 1년여에 걸쳐 걸었던 북한산둘레길. 한 해를 정신적으로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었던 그 길을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둘레길은 틈나는 대로 다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사진이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클릭하면 약간 커진다) 오늘 가게될 길은 회룡사를 지나 회룡사거리, 범골삼거리를 지나 사패산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에 오를 때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나 홀로 걷는 산행이라면 더더욱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내딛을 필요가 있다. 물론 빠르게 속전속결식으로 산에 오르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저 거북이 스타일이다.


회룡탐방지원센터인데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직 영업개시(?) 전이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북한산국립공원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몇 장 안 되지만 여기까지는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작은 화면으로 볼 때는 그래도 괜찮아보이더니 모니터로 옮겨오니 '영 아니올시다'라는 느낌이다. 뭔가 인화된 사진을 물에 담가둔 느낌같기도 하고... 아이폰으로도 사진을 잘 찍는 분들도 있던데.. 내 둔한 감각을 탓해본다.


어디 가서 길치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 편인데 산에만 오면 어디가 어딘지 아니 어느 봉우리가 무슨 산이고 지금 내가 있는 위치가 산의 어디쯤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산행 경험이 적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다. 아무튼 저기 뒤쪽으로 보이는 머리가 벗겨진 봉우리가 사패산 정상인가라고 추측만 해본다.


전에 만난 적이 있는 북한산둘레길 중 하나인 보루길이다. 보루길로 올라가면 사패산 보루들을 만날 수 있다.(이전 글 참조) 그렇다는 것은 보루길을 통해서도 사패산에 오를 수 있다는 셈인데 이전 글을 뒤적여보니 포대능선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능선따라 죽 이어진 모양이다. 사실 사패산도 북한산 자락이니 어디로든 길은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길을 조금 더 가면 만날 수 있는 '사패공방'. 주인장은 안 계신지 조용했고 벽 쯤에 붙어 있는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누군가를 기다려본 지도 제법 오래됐다.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가. 그래도 역시 누군가 만날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조금 더 행복하다. 머지 않아 나 역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인다'라는 말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며 걸음을 옮긴다.


이곳이 회룡골계곡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지도앱이라도 켜서 확인을 했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산행은 그저 산과 내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거기에 다른 요소들을 끼워넣는게 내키지 않아서였다. 산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인데 굳이 거기에 인간 세계의 날카로움을 덧입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사패산 등산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내도다. 내가 가는 길은 가운데에 있는 회룡사를 지나 위로 올라가 사패능선에서 우회전하는 코스다. 등산 정보를 찾아보니 4코스라고 한다. 사패능선 그러니까 회룡사거리에서 좌회전으로 하게 되면 포대능선을 지나 도봉산 자운봉으로 갈 수 있다. 언젠가 산행이 조금 더 익숙해지면 가 볼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오늘은 사패산만 바라보고 올라가보자.


조금 더 올라가면 회룡사를 만날 수 있다. 부처님오신날이 막 지난 터라 아직 연등이 곳곳에 매달려 있다. 큰 행사가 끝나서인지 인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혼자 돌아다니자니 어쩐지 어색해져서 사진만 살짝 찍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보니 산에 있는 절에서는 점심 때 절밥을 준다는데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하산할 때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이때까지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왼쪽으로 보이는 좁은 길이 등산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산 정상만 목표로 하고 길을 나서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태백산, 인왕산, 청계산 정도가 아닐까? 물론 객기로 올랐었던 설악 대청봉도 있었지만 그건 도무지 산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이전에 올린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무튼 산행은 둘레길 걷기보다는 준비할 것들이 많다. 오늘은 스틱을 두고 왔는데 하산길에 생각하면 가져오는 것이 나았다.


산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돌탑(?)이다. 산을 오르는 이들의 작은 소원들을 모아놓은 돌무더기. 크고 높은 것들도 많지만 이렇게 앙증맞게 있는 것이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돌 하나를 주워 올려볼까 하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누군가 올려 놓은 돌 위에 내 소원까지 올리면 소원을 이루어주는 분(?)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서다. 그냥 저 돌을 올린 분들의 소원만 이루어져도 충분하다.


산을 조금이라도 다녀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에서 만나는 이정표의 거리는 진짜 별 의미가 없다. 단순히 사패능선까지 800미터다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등산길은 꾸준한 오르막이고 사패산의 경우는 일직선에 가깝지만 어느 산들은 구불구불한 길들이 제법 많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 거리만 생각해서 등산이나 하산 혹은 휴식 계획을 세우면 낭패를 보기 쉬우니 페이스 조절을 잘 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저런 표지판이 보이면 대충 곱하기 2를 해버린다. 사패능선까지 1.6km 남았다고 보고 간다는 말이다.


갈림길에서 내가 길을 잘못 든 지점이다. 양쪽 길 모두가 등산로처럼 되어 있어서 어느 길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쪽 길로 접어들었는데 이길의 끝은 막다른 곳이다. 그럼에도 들머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표지판이 하나 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없는 것이 나았다. 왜냐하면 이길의 끝에서 만나는 곳이 꽤나 멋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골짜기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는 약수터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약수터라고 하기에는 물이 고여있지 않으니 아닌 것 같지만 바가지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물을 먹으라는 소리니 약수터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물은 제법 시원하다. 요즘에는 산에 흐르는 물도 안심하고 마시기 어렵다지만 산행 중간에 만나는 물마저 외면해야 한다면 너무 인간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다만 바가지에 봄벌레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파이프를 들어 올려 한 모금 산의 느낌을 맛본다.


내가 좋아하는 산은 겨울산이지만 봄의 산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지난 겨울의 못 다 지워진 흔적들과 다가오는 여름을 미리 알리는 징조들이 섞인 느낌인데 이도저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봄의 산이 주는 매력이다. 요즘은 봄이 워낙 짧아 봄의 산을 느끼려면 4월말에서 5월초 정도가 적당하다. 그전은 겨울의 느낌이 강하고 그 후는 여름의 느낌이 강한 까닭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만 오늘도 입하가 지났으니 이미 여름인 셈이지만...


이쪽 계곡에는 물이 전혀 흐르지 않는다. 아마도 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면 이 계곡에도 물이 흐를 것 같은데 다른 계절을 겪어보질 않아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다. 여름에 다시 한 번 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사패산은 북한산국립공원 안에서도 가장 자연림이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확실히 나무들이 어느 곳보다 울창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곳곳에 짙에 깔린 이끼들을 보면 이 산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다.


산에 오를 때는 가능하면 작은 것들을 좀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은 그런 걸음의 결과일 뿐이지 끝까지 오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무작정 정상에만 오를 생각으로 급하게 산을 오르다보면 그 중간에 있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을 그냥 지나쳐버리게 된다. 산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정상에만 있지 않다. 그 많은 것들을 버리고 끝에 있는 하나의 이야기만 들으려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은 아닐까?


경사가 급해지는 것을 보니 사패능선에 거의 다 와가는 모양이다. 둘레길을 걸을 때도 그랬지만 역시나 별 다른 식량(?)준비를 해가지 않는 탓에 여기쯤 오니 제법 숨이 차다.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이야기는 잘 하면서 정작 나는 제대로 준비를 안 한 셈이다. 혼자 하는 산행이다보니 이것저것 챙기는 것이 번거롭다고 스스로 변명도 해보지만 그대로 짊어지고 돌아가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먹거리는 챙겨와야 한다.


사패능선 그러니까 회룡사거리인데 이곳에서 만나는 표지판은 자운봉과 사패산이 정반대의 거리에 있음을 알려준다. 거리가 만만해보이지만 위에서 적은 것처럼 저 숫자에 곱하기 2를 해보면 어느 곳도 만만하지가 않다. 표지판을 가만히 보니 자운봉은 '봉'이고 사패산은 '산'이다. 이건 산의 규모에서 오는 차이인데 사패산은 여러 봉우리들이 없는 반면에 도봉산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도봉산의 주봉은 자운봉이다.


능선길은 거의 평지도 되어 있어 걷기가 어렵지 않다. 다만 가림막이 없다보니 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기 때문에 제법 쌀쌀한 느낌이다. 아마 겨울에 이곳에 왔다면 이쯤에서 바람막이 정도는 입어야 체온유지가 되지 싶다. 물론 여름에도 올라오는 동안 땀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능선에 오르면 순간적으로 춥게 느껴질 수 있으니 바람막이는 사시사철 배낭 안 구석에 넣고 다니는 것이 좋다.


사패산은 흔히 말하는 꼴딱고개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지만 사패능선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그리고 이 계단과 이어 등장하는 바위들에서는 체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좋다. 이 계단은 갯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촘촘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두 칸씩 성큼성큼 올라가기 보다는 한칸씩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상 부근의 바위인데 여기는 경사에 비해 어렵지는 않지만 일방통행 코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오늘 신고간 신발은 바위적응형 등산화는 아니어서 약간 미끄러웠는데 바위 위에 흙 등이 있는 경우는 특히 조심하자. 바위에 척척 달라붙는 등산화가 아니라면(물론 붙어도 마찬가지지만) 무리는 금물인 지점이다.


정상에 오르면 평평한 모습의 작은 운동장 같은 느낌이 드는데 계절마다 그리고 날마다 다르겠지만 오늘은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었다. 정상의 경우는 바람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사패산 정상은 그냥 통바위들이 듬성듬성 연결된 형태이고 조금 내려가면 경치가 더 잘보이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아래 쪽 바위로 향하게 되는데 바위 끝이 아무 것도 없이 바로 절벽으로 이어지므로 조심하도록 하자.


바위 끝 쯤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겠다고 앞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자. 사실 조금 더 간다고 해서 뭐가 더 잘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정상에서 장비를 다시 점검하고 하산을 준비한다. 원래는 올라온 길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이전 둘레길의 기억이 떠올라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본다. 하산길은 거의 사진이 없는데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내 습관이라면 습관인데 등산보다 하산길이 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산의 방향은 원각사 쪽으로 정했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상당히 빠른 시간에 하산이 가능한데 문제는 교통편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이 하나고 길이 약간 험하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다. 보통 폭포가 있는 루트는 길이 험하다고 하는데 예전에 북한산에서 한 번 제대로 고생을 해본지라 고민을 조금 하긴 했지만 일단 내려가보기로 한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아이폰으로 촬영.


세월이 계단을 만들었다.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걸음을 지탱하며 살아왔을까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그 걸음에도 이 나무는 여전히 이곳에 버티고 서 있다. 이 길을 지나려면 이 나무를 밟지 않으면 안 되고 그 고통 속에서 나무는 점점 더 단단해졌으리라. 사람도 역경을 이겨내면 강하진다고 말을 하는데 요즘은 그말이 그렇게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역경 안에서 오히려 가라앉는 모습을 더 많이 봐서일까.. 결국 모든 것은 사람 나름이다.


원각사 길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다. 내가 사패산에 올라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곳. 산너미길로 오는 길에 먼발치에서 바라본 사패산이 그리도 정겨워 보여서 이길을 걷던 날 사패산에 오르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패산의 정상을 다시 바라봤다. 지난 겨울의 약속을 이제야 지켰다고 산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했어도 여전히 산은 그 자리에 서서 내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기다림이란 만남을 전제로 할 때 그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산은 내가 그 초입에서 산을 바라볼 때 그 모습 그대로 내가 그를 떠나는 순간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Nikon D700, AF 35mm f/2.0D & iPhone 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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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22미터인 사패산은 '강북5산'이라 불리는 '불수사도북' 그러니까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의 하나로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다른 산을 올라본 적이 없어서 내 판단기준이 없기 때문인데.. 나중에 내 기준에서 느낌은 다시 적어보겠다. 아무튼 오늘 오른 코스는 지하철 1호선 회룡역에서 출발해 회룡사를 거쳐 사패능선을 통해 정상에 오른 다음 원각사 방향으로 하산해 송추에서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대략 전체 이동 경로는 위 사진과 같은데 평소 걸음은 빠른 편이지만 산행은 최대한 느릿느릿 가는 편이라 전체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 이동거리는 8.2km였다. 하산 후 교통편은 하산한 지점에서 바로 건널목을 건넌 다음 34번이나 360번을 타면 구파발역으로 갈 수 있으니 그곳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면 된다.



일상으로 한 걸음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가 예전부터 내게 익숙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 가장 익숙한 일이라면 역시나 글을 쓰는 일, 사진을 찍는 일 그리고 운전을 하는 일인데 일단은 글과 사진을 다시 추스려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사실 과분한 카메라를 2대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먼지만 쌓이게 방치해두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라 어디 장터에라도 내놓으면 좋은 값을 받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내게는 장식품 정도의 역할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꽤나 미안한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어디를 가야 비로소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예전에는 '출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었다. 특히나 디지털이 일반화되기 이전의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남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어서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요즘은 카메라 둘러메고 다니는 것(오히려 SLR은 촌스러워 보일 지경이다)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숫기없는 내게는 꽤나 좋아진 시절이다.

테라야마 슈지의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구호(?)도 있듯이 일단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면 무언가 세상이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한 가지 늘 잊는 것이 있는데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만큼 세상 역시 나를 다르게 본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이것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 위주의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래서는 일방적인 사진만 나올 뿐이다. 참 깨닫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모델 사진을 찍어도 모델과 눈이 맞았을 때 찍은 사진이 좀 더 실감이 나듯이 일상의 소소함을 찍을 때도 그 일상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들을 잡아보자라고 생각하면 좀 더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늘 염두에 두고 싶은 생각이다.

아무튼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런 일상에 익숙해야 하기 때문이다.


Nikon F5, AF Nikkor 24-85mm F2.8-4D, Ilford Delta 400,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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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도 지난 지 2주가 넘었습니다. 23일이면 우리 24절기 중 '처서'지요. 더위가 물러간다는 절기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였는지 참 견디기 힘들었는데 어느샌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찬기운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가을입니다. 가을은 '아, 이제 가을인가?'라고 생각할 즈음이면 이미 가고 없는 특이한 계절입니다. 달로 따져보면 10월 정도가 그나마 가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올해는 뭐랄까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렇지 않은 적이 없겠지만- 유난히 스펙타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생이 여러 번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직 올해가 몇달이나 더 남아 있으니 -벌써 이런 말을 하게 되다니요- 어떤 일들이 더 생길지 참 흥미진진해지기도 합니다.

발이 아프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사진을 찍으러 밖을 다니지는 못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덕분에 북한산 일정도 가을이나 되어야 갈 수 있을 것 같고요. 사실 사진이라는 게 어디를 가야 찍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이 또한 게으름과 나태함을 감추기 위한 핑계가 아닐까 합니다. SLR이 무겁다고 서브카메라까지 들여놓고서 그놈 역시 제습함에서 쿨쿨자고 있으니까요..

마음은 여전히 허전합니다. 가을이 오고 그 가을이 깊어가면 그 허전함은 더해지겠지요.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벗이 바로 이 허전함이라는 녀석이 아닐까요. 이 녀석이 항상 곁에 있으니 떨쳐버리고 싶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해 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연초부터 달라붙은 이 녀석이 영 떨어질 줄을 모르고 더 품으로 파고들고 있으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네요.

세월은 가고 나이는 먹어가고 추억은 쌓여갑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삶인데도 우리는 너무나 당연스럽게 내일을 이야기하고 다음 주를 이야기하고 내년을 이야기하며 살아가지요.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 혹은 만났던 사람 중에 혹은 가졌었던 물건 중에... 딱 한 가지만 그대로 되돌려준다면 어느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Nikon D100, AF-S Nikkor ED 17-35mm f/2.8D 


SLR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렌즈에 대한 고민을 늘 하게 된다. 99년으로 기억하는데 니콘의 F100으로 SLR에 입문한 나로서는 그동안 소위 '장비병'을 거쳤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진 장비 자체 또한 상당히 좋아하는지라 중형포맷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장비들은 써 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끝에 내 나름대로 내린 장비 세팅은 의외로 간단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렌즈들을 거치고 거쳐 끝내 정착한 렌즈는 아래의 두 개다. 물론 아쉬운 거라면 광각 영역이다. 20mm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당분간은 조금 미뤄두어야 할 상황이다. 

첫번째 렌즈는 구형 35mm렌즈다. 정식 명칭은 AF NIkkor 35mm f2.0D인 이 녀석은 1995년에 초기 버전이 출시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렌즈는 2006시리즈로 2006년 이후 발매된 버전이다. 구형 렌즈인데다가 포커싱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고 뭔가 디자인이 고리타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나갈 때면 소위 렌즈캡으로 사용하는 녀석이다. 35mm는 오래 전부터 워낙 내 눈에 익숙한 화각이어서 그런지 이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편안한 느낌이 든다. 가장 현실감있는 렌즈가 아닐까 싶다.

니콘으로 정착하기 이전에도 콘탁스, 라이카 기종 모두 35mm를 사용했는데 심도만을 이용해 노파인더 촬영도 간단하고 어떻게 찍어도 가장 무난하게 나오는 화각대라는 생각이다. 물론 50mm를 표준으로 사용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넓은 감도 있겠지만 렌즈의 화각이라는게 사실 어느 정도는 익숙함에서 오는 것이지 싶다. 28mm를 사용하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화각대가 가장 편안하다고 하니 말이다.

두번째 렌즈는 55mm 마이크로다. 원래는 매크로라고 해야 하는데 니콘의 고집인지 굳이 마이크로라 쓴다. 흔히 말하는 접사렌즈인데 1979년에 처음 발매된 렌즈이니 역사도 제법 되는 렌즈다. 그렇다고 골동품은 아니고 시리얼 8번대는 2006년 이후 출시된 렌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녀석은 5번대 시리얼로 아마 2003년 정도에 나온 렌즈가 아닐까 싶다. 이 렌즈는 디지털로 넘어 오기 전에도 두번을 구입했다가 내보낸 녀석인데 D700으로 넘어오면서 다시 들인 녀석이다. 예전에는 구하기가 어려워 미국에서 공수를 해오기도 했었다.

니콘의 전형적인 Ai-S타입렌즈다. 이 렌즈는 접사렌즈임에도 풍경에서도 대단한 성능을 보이는 렌즈여서 전천후로 활용하기에 적당하다. 가격도 저렴해져서 중고장터를 뒤져보면 깨끗한 녀석을 10만 원대에 들일 수 있다. (물론 신품을 구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니콘 수동렌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일이다. 

이런 분위기지만 칼 차이즈의 수동렌즈들은 여전히 대단한 가격대를 자랑한다. 특히나 25mm는 여전히 유혹의 대상이긴 하다. 예전같으면 어떻게 장만이라도 해볼까 전전긍긍했겠지만 요즘은 좋은 장비들을 봐도 크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사진 실력이 장비가 달라진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고 결정적으로 사진을 찍으러 좀처럼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단렌즈가 좋으냐 줌렌즈가 좋으냐. 밝은 렌즈가 좋으냐 어두운 렌즈도 괜찮냐. 끊임없이 사람들이 묻는 질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줌렌즈는 편리하지만 생각을 흐트러뜨린다.내가 단렌즈를 고집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자동렌즈는 편리하지만 생각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내가 수동렌즈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편의성과 즉시성을 끝내 포기할 수 없어 LX5를 들였으니 말처럼 실천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생각을 해 본다. 

결국 결론은 자기가 편하면 된다. 사진 역시 자기가 보아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고가의 장비를 들이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 역시 자기만족이다. 히말라야에 오를만한 옷을 입고 동네 뒷산을 가건 고성능 스포츠카로 마트에 장보러 가건 어디까지나 그건 개인의 문제니 말이다. 사진 장비도 마찬가지다. 200만 원대의 조리개 2.8렌즈를 들고 다니건 번들렌즈를 들고 다니건 그 사람이 좋으면 그만이다. 등산장비가 취미일 수도 있고 자동차 자체가 취미일 수도 있고 카메라나 렌즈 자체가 취미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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