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최종철 역
민음사 | 200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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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질투, 미움과 배신 그리고 죽음이란..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 지난 번 서평을 쓴 멕베스가 권력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오셀로는 전형적인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남녀간의 사랑이야 워낙에 오래된 주제다보니 오래 전에 쓰인 글이라 해도 지금 읽어도 별로 이질적이지가 않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질투에 휩싸인 남자가 아내를 죽이고 그것이 오해와 음모에서 벌어진 것을 깨닫고 자살을 하게 되는...어쩌면 요즘도 흔히 일어나는 비극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랑을 깨는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질투와 오해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리고 그 본성이 세월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흥미를 끈다.

오셀로의 비극은 단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오해하고 살해했다는데 있지 않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라는 지고하고 순수한 여성을 오해하고 살해하도록 만든 제3자가 있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두 사람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이아고의 등장과 그의 모함이 이 비극을 이끌어간다.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아고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셀로의 행동이 이 비극을 만들어가도록 부추겼을지는 몰라도 막상 음모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이아고라는 인간 내면의 사악함이 없었다면 이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한 인간의 증오심과 복수심이 전혀 다른 양상에서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점이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들과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약간 시점을 바꿔 보자. 데스데모나는 이 비극에서 어떤 위치일까? 단지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복수하기 위해 선택한 대상일뿐일까? 그렇다면 데스데모나의 위치는 너무도 하찮게 된다. 정절과 고귀함의 상징인 데스데모나를 그녀와는 상관도 없는 제3자가 파멸시키도록 만든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아직 이 부분까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종과 계급과 나이를 넘어서 오셀로라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그때문에 죽게 된다. 작품에서는 그게 전부다. 셰익스피어는 남녀차별주의자였던 것일까? 다른 작품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의 데스데모나는 너무나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린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이 점을 알기 위해서는 한 번의 독서로는 부족하리라...

그리고 결말에서의 오셀로의 자결..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것을 죽음으로 속죄하는데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들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가 무책임하다고 생각된다. 죽음이란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다.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결국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것은 아니었을까..

햄릿, 멕베스에 이어 읽은 오셀로다. 세 권 모두 출판사와 번역자가 다른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열린책들의 번역이 제일 낫지 않나 싶다. 민음사의 오셀로는 전반적으로 희곡이라는 느낌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마치 그냥 소설을 읽듯이 술술 넘어가는 방식인데 이런 편집을 좋아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내 경우는 열린책들처럼 연극의 대본처럼 된 방식이 읽기에 편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선택이니 가능하다면 직접 서점에 가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모두 희곡이기 때문에 한 번 읽어볼 양으로 책을 펼쳤다가도 쉽게 읽히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면 그저 제목만 기억할 뿐 내용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 되기 십상이다. 내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 햄릿은 그나마 서평을 쓰기 위해 완역판을 읽었지만 나머지 3편은 읽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큰 마음 먹고 시도한 작품이 맥베스다.

4대 비극이라 불리는 작품들 중에 심리묘사가 가장 잘 된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맥베스' 이책을 꼽는다. 햄릿을 꼽지 않은 이유는 그 머뭇거림이 때로는 구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맥베스의 과단성에 조금 더 점수를 준다. 물론 이 생각은 현재의 내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맥베스의 과단성을 무모함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맥베스에는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과 대상이 존재하는데 바로 마녀들의 존재다. 그리고 이 마녀들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녀들의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안개 낀 더러운 대기 속을 날아다니자."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니.. 한번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이 문장이 확 와닿을 때가 있다. 이 문장만을 떼어 놓고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맥베스 전편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이 문장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다는 느낌이 온다. 

맥베스의 감정 변화, 맥베스 부인의 감정의 기복.. 첫장에 등장하는 충성과 반역, 마지막장에 등장하는 충성과 반역.. 아름다운 것이 곧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라는 문장을 줄거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허나.. 이 문장은 이 희곡을 읽는데서 그치기에는 왠지 아깝다. 어쩌면 하루하루의 나의 삶 혹은 타인의 삶과 세상의 번거로움에 빗대어 보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다. 아니 바로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 이 문장은 1초도 거르지 않고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나 '이익'이 끼어들게 되면 아무리 숭고한 이상과 생각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이익과 어긋나면 곧 추한 것이 되고 비열하고 더러운 생각과 행동일지라도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면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경우를 우리를 직접 삶 속에서 겪고 있지 않은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일까지.. 그 영역은 무한대에 가깝지 싶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우리는 많이 가지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대답은 하지 못 한다. 그러나 세상에 상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맥베스는 그런 상대적인 진리 안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어 읽는내내 가슴이 찔리는 느낌이다. 

내면에 감추어둔 욕망을 비밀을 꿰뚫림당하면 불편한 법이다. 맥베스는 그런 불편함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선사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이전의 하루키가 그랬었고 그때의 하루키의 글에 나는 푹 빠지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 궤도를 많이 벗어난 모습에 관망 중이긴 하지만..

번역은 제법 마음에 든다. 뭐랄까 상황상황의 격정적인 감정을 잘 살리고 있어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상대적인 것이니 번역자의 번역이 지나치게 극적이다라고 느끼는 분도 계시리라..

이제 4대 비극 중 햄릿과 맥배스에 대한 감상이 마무리됐다. 곧 이어 올라갈 글은 '오셀로'다 이번에는 민음사의 번역이다.



이번에 읽게된 책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입니다. 4대 비극의 하나로 꼽히지만 사실 작품의 이름만 들어왔거나 TV나 영화로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보통이지요.  그나마 대중적인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햄릿의 경우는 제목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번에 다행스럽게도 완역판이 출간되어 셰익스피어 본래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햄릿은 아시다시피 희곡입니다. 따라서 책 전체는 대화로 이어져 있죠. 개인적으로는 소설이나 수필을 쓰는 것보다 대화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셰익스피어(실존 논란은 다루지 않겠지만)의 문학적인 재능은 대단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남녀관은 오늘날과는 많이 다르지만 아무튼 많이들 들어본 대사 중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비난하는 장면에 사용된 이 대사는 요즘은 본래 의미와 다르게 패러디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는 합니다만..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이후의 햄릿의 행동과 대사들을 생각하면 쉽게 패러디에 사용할 표현은 아닌 듯 합니다.

햄릿은 마지막까지 여자들에게 극단적인 실망을 하게 됩니다. 모친에 대한 실망을 전체 여자라는 범주로 확대를 한 것이랄까요. 결국 오필리아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 하고 죽음을 맞게 되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과 오델로는 여자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마치 니체의 여성관과도 비슷한 경멸조의 대사들이 종종 비치죠.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극단적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부분만이 아닌 큰틀로 파악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니체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요.


햄릿은 우유부단의 극치였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는 햄릿은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없는 인물입니다. 'To be or not to be'로 시작되는 연극 상연 전 장문의 독백은 그의 우유부단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전체 대사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내면의 고민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승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떤 일이건 결의를 하기 전에는 그만한 고뇌와 번민의 시간은 있는 것이고 그만한 고뇌없이 행해진 일이라면 차라리 즉흥적인 것이 아닐까요.

처음 부왕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햄릿은 부왕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그것을 완수합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고민과 방황은 오히려 본래의 마음을 숨기기 위한 가장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햄릿의 복수극은 철저하게 이어집니다. 우유부단이라는 말은 차라리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적당한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이 됩니다. 




햄릿의 고민은 상당히 깊습니다. 그가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단지 그만의 고민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똑같이 고민해봐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독백을 통해 상당히 심오한 인간 본성과 그 방향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동시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른 것이라는 그만의 가치관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여러 번 문장을 새기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진리인 것은 아니지만 생각할 '꺼리'가 주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얻는 또 하나의 보물이 아닐까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대표적인 인용구 다음의 문장들입니다. 무려 한 장이 넘게 햄릿의 독백은 이어지는데 햄릿 전체를 관통하는 고뇌와 번민이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너무도 짦군요. 여자의 사랑같이

제목으로 제가 삼았던 이 문장은 사실 한 문장이 아닌 햄릿과 오필리아의 대화입니다. 첫 번째 대사는 오필리아의 두 번째 대사는 햄릿의 대사입니다. 여자에 대해 어쩌면 극도록 경멸적이 되어 버린 햄릿의 자조적인 대사이기도 하죠. 이 대사에 대해 오필리아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햄릿과 오필리아의 많은 대화들을 보면 햄릿은 내뱉듯이 이야기를 하고 오필리어는 적극적인 반격(?)을 하지 않습니다. 순결하고 정숙한 아름다움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오필리아가 왜 뒤틀린 햄릿의 생각들에 구원의 메시지를 주지 않았는지는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런 면에서는 리어왕이 좀 더 구체적으로 구현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

햄릿은 상당히 양이 적은 편입니다. 집중해서 읽으면 반 나절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고 내용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안에 담겨 있는 고민거리는 상당히 많아서 책을 읽고난 후에도 한참의 여운이 남습니다. 저는 보통 이런 책은 한 번 가볍게 읽고 묻어 두었다가 기억이 사라질 즈음해서 다시 읽습니다. 이전의 독서의 편견을 비우고 새로운 해석을 하기 위함인데 햄릿 역시 그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햄릿이 쓰여진 시기를 생각하면 내용이 진부하고 따분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웬만한 소설들보다 오히려 매력적인 책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희곡의 특성을 감안해서 조금 두께가 늘어나더라도 장별로 확실하게 구분이 지어진 편집이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점 그리고 글자 크기가 면마다 일정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편집 상 그런 배려를 한 것이라면 이유를 명시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 하나 욕심이라면 햄릿과 같은 책은 평생 소장판으로 가치가 있는데 소장용 양장본이 나와 주면 어떨가 싶기도 합니다. 

한 동안 외부 리뷰를 많이 했는데 시간에 쫓기듯이 책을 읽어야 하는 점이 많이 아쉽네요. 한 권 더 신청을 해 둔 것이 있기는 한데 아무튼 그동안 리뷰를 위해 묵혀만 두고 있던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다시 꺼내 들어야겠습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 코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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