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 중의 하나라고 한다. 사실 가보기 전에는 얼마나 낭만적인지 알 길이 없지만 책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이미지로만 보던 장소를 오감으로 느끼는 순간은 정말 짜릿하고 가슴이 뛰는 일이다.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스위스의 느낌을 잘 살리는 장소라면 만년설이 뒤덮인 알프스와 루체른 호수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루체른 호수를 운행하는 유람선의 엔진(?) 모습이다. 1901년부터 사용한 것일까? 빨간 원색이 조금은 과한 것을 빼면 요즘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깨끗하다. 제법 소음은 있지만 큰 배를 움직이는 심장을 바라보는 느낌은 또 색달랐다. 

어느 프로그램에선가 등장해서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빈사의 사자상' . 사자상 위에 적혀 있는 "HELVETIORUM FIDEI AC VIRTUTI" 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헬베티아(스위스)의 충성과 용감"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오늘날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스위스 용병들의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사자상 자체는 웅장하고 멋드러지지만 찾아가는 길은 관광지처럼 화려한 편은 아니었다. 이점은 유럽을 다니는 내내 느꼈던 점인데 아무리 유명한 유적이나 기념물이라도 철통같은(?) 보호를 하지는 않는다. 파리에서 들었던 사람의 손길조차 역사가 된다는 말이 여행 내내 와닿았다.

루체른의 또 하나의 명물은 역시 카펠교인데 사실 사진으로 찍어도 뭔가 딱 느낌이 오는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카펠교 근처의 정말 유럽같은 느낌을 듬뿍 주는 건물들이 오히여 내눈에 와닿았다. 비록 관광지이기는 했지만 세상 걱정없이 자유로운 모습으로 편안하게 풍광을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부러웠다. 물론 나도 이 순간만큼은 그들과 같았지만 여행이 끝나고 돌아갈 일상이 조금은 마음을 누르는 느낌이었달까

세상을 살면서 꼭 해야할 일은 '여행'이다. 물론 전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지만 각자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가능한 많이 그리고 자주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이고 세계인 것처럼 여행의 중간에 만나는 또 다른 우주와 세계들을 놓친다면 길지 않은 삶이 얼마나 건조할까. 일상의 무게에 눌려 세상과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꽤나 쓸쓸한 일이지 않을까...


 D700, AF 35mm f/2.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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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특징 중의 하나라면 뚜렷한 원색이 꽤 많았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다닌 길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거리를 걷는 내내 자꾸 바라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강렬한 색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하지 않고 주변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생각됐는데 어쩌면 신혼여행이라는 특수한 환경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주 보면 조금은 질리려나? 


파리 중심가는 아담하다. 인구가 많지도 않은 도시다. 복잡함보다는 인생이 곳곳에 널려있다. 낭만의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역사와 사람의 도시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 많은 나라들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프랑스는 내게 참 많은 생각을 던져 주었다. 다시 가 보고 싶은 나라 그리고 도시를 원없이 걷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집집마다 창가에 화분이 놓여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가장 달라진 것 중의 하나는 사물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낮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 아내는 길을 걸어도 허투루 걷지 않고 작은 꽃송이 하나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늘 무표정하게 초점을 두지 않고 걷는 나와는 참 많이 다른 사람이다.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하루하루 달라진다.


가만히 아내의 뒤에서 걸어본다. 우리가 걷는 순간순간이 둘만의 기억이 되는 시간.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 만난 인연이 이제는 오롯이 한길을 바라보고 걷게 되었다.  아직은 부부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하다. 그리고 삶의 남아있는 시간들을 온전히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 아닐까. 울퉁불퉁한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내가 느낀 것은 그렇게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Nikon D700, AF 35mm f/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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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느낌이란 가보기 전에는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막연하게 다른 미디어를 통해 접한 것과는 정말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내게 크게 다가온 것은 '여유'  물론 우리나라에서 살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겠지만 이곳의 여유는 뭐랄까.. 삶 자체에 대한 여유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도시 자체가 오래 전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점도 유럽 특유의 문화적인 배경인데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그 도시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조금은 더 간직하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내게 파리는 화려함보다는 소박함 그리고 삶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런 도시로 기억되기 시작했고 여행 내내 그 감정은 점점 더 짙어져갔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 이 공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닌 이미 살아온 이들의 유산임에도 마치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주인인양 행세하는 것은 우리의 뒤를 이을 세대들에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걸은 파리의 울퉁불퉁한 길은 기억이 남겨준 유산인 동시에 과거의 어느 날엔가 그 길을 걸었던 누군가의 자취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Nikon D700, AF 35mm f/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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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찾는 곳이 이곳 정동진이 아닐까 싶다. 정동진이 유명해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이곳을 찾은 것은 새벽열차를 타고 떠나는 거의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청량리에서 11시 넘어 출발해 새벽 4시경에 도착하는 무박열차는 한창 나이 때는 별 무리 없이 즐기며 다녀올 수 있는 낭만이 있겠지만 한 두 해 나이가 들다보면 어쩐지 낭만보다 고단함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부터 스냅식으로 여행을 죽 그려보고자 했던 생각은 덜컹거리는 열차와 자는둥마는둥하는 밤샘에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35mm를 들고가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은 극심했지만 결국 가벼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LX-7만 들고 왔는데 일상의 스냅과 여행 스냅은 확실히 달라서 줌렌즈의 유용성에 새삼 놀랐달까.. 그래도 최대한 괜찮은 사진을 건져보겠다고 RAW 파일로 찍었더니 돌아와서 편집이 만만치가 않았다.


동해의 일출이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건지 좀처럼 해가 뜨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지만 하루의 시작을 연인과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파인더가 없는 똑딱이 디카는 여전히 사용법이 익숙지가 않아서 노출을 잡는데 늘 애를 먹는다.- 그래도 해가 뜨는 순간. 주변이 어둠에서 단 몇 초 사이에 환한 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역시나 감동적이다.


나는 바다를 유난히 좋아한다. '바다에 와서 소원 풀었네요?'라는 그녀의 말에 새삼 내가 얼마나 바다 이야기를 많이 했나 싶기도 했다. 한 없이 멀리 펼쳐진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모습, 약간은 비릿한 냄새와 함께 얼굴을 스치는 바람.. 이 두 가지만 해도 바다를 찾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일상이 지나치게 도심에 집중이 된 삶을 평생 살아오다보니 막히지 않은 공간 자체에 대한 동경이 늘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단 몇 분 사이에 어둑했던 역 주변에 햇살이 드리우고 보이지 않던 길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그렇구나..원래 길이 있었는데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이구나.. 우리네 삶도 그런 것 같다. 어딘가 분명히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 곧게 뻗어 있음에도 잠시의 어둠에 마음을 빼앗겨 그 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 것은 아닐까.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했다. 그 어둠만 이겨내면 사방이 환해지는 공간 속에 내가 걸어갈 길이 또렷하게 놓여있음을 찾을 수 있다.


사진은 많이 찍고 볼 일이다. 예전처럼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해야 하는 수고로움(물론 그 기다림의 즐거움은 없어졌지만)이 사라진 지금은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사진이 몇몇 특별한 계층들의 전유물이 되던 시대도 이미 지난 지 오래고 휴대폰에 붙어 있는 카메라만 해도 좋은 사진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게 요즘이다. 어색함에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욕망에 누르지 못한 한 컷에 나의 소중한 기억들이 담길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사진 찍는 일에 인색할 것은 아니다. 


그녀를 만난 이후 내 사진에 대부분은 소위 '셀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내 사진의 색이 변한 부분 중의 하나기도 한데 처음에는 나도 어지간히 어색했었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잡을 정도가 됐으니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모양이다. 아무튼 덕분에 DSLR은 점점 더 제습함 속에 들어갈 일이 많아졌다. 그나마 들고 다니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35mm인데도 말이다.


여담이지만 요즘 새로 출시된 두 녀석이 마음을 어지간히 흔든다. LX-7의 후속기(사실 따져보면 완전히 달라졌다.)인 LX-100, 그리고 항상 나와 궁합이 맞지 않았던 캐논의 G7X다. LX시리즈를 제법 오래 사용을 했었기에 어쩌면 LX-100으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내 사진인생에서 늘 뭔가 나와 엇갈렸던 캐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각보다 크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다. 뭐.. 직접 내 손에 오려면 내년은 훨씬 넘은 언젠가가 되겠지만 가끔은 이런 상상으로도 즐겁다.


Panasonic LX-7 & iPhone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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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대둔산)은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잡은 산이라 한다. 해남에서 찾은 산이니 이보다 더 남쪽의 산이라면 한라산이 있겠지만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들여야 하니 온전히 걸음을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산이라 불러도 어색함이 없다. 그 두륜산에 자리잡은 사찰이 바로 대흥사다. 예사롭지 않은 일주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대흥사는 규모면에서 찾는 이를 압도한다. 보통 사찰을 떠올린다면 넓지 않은 터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불전들을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이곳 대흥사는 어디서부터 사찰의 시작인지조차 알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그 덕분인지 사찰 경내를 걷는다는 느낌보다는 공원을 걷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진의 돌에 '13대종사도량'이라 적혀 있다. 대흥사는 불교의 맥을 잇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사찰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산대사가 이곳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걷다보면 서산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의 부도가 자리한 '부도밭'을 만날 수 있는데 무려 54기라 하니 대흥사의 법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대흥사에서 만날 수 있는 다채로움 중에 이 '연리근'은 유난히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가지가 이어진 '연리지'는 종종 만날 수 있지만 뿌리가 이어진 '연리근'은 희귀하기도 하고 연리지에 비해 더 끈끈하달까 좀 더 각별하달까..그런 느낌이 드는 나무였다. 이렇게 대흥사는 전각들 외에도 볼 거리들이 많은 것이 특별한 점인데 남도 여행을 하게 된다면 하루 정도 온전히 대흥사만을 위해 할애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본다. 특히나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여행은 각자의 삶의 연장인 동시에 두 사람의 삶이 마주치고 얽히는 그런 순간이었다.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 아닌가.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이 어색하지 않고 부드러운 바람처럼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기에 각별했던... 그런 모든 순간들의 이어짐. 그것이 우리의 여행이었다.


사진은 셔터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감정을 온전하게 프레임 안에 담아낼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뷰파인더 안에서 본 느낌이 나중에 집에 돌아와 모니터를 통해 그대로 느껴진다면 그것으로 한 번의 셔터가 움직인 수고로움은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사진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는 약간 달라진 부분인데 세월이 지난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에도 변화를 주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저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무언가 달라지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저 문 뒤의 삶이 궁금하지 않게 됐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이제사 깨달은 까닭이다.

그러고보니 35mm 렌즈 하나로 지낸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28mm와 35mm가 가장 내 눈과 일치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화각이다. 35mm말고도 55mm가 하나 더 있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요즘은 표준화각대의 줌렌즈가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마도 사람을 찍어야 할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Nikon D700, AF 35mm f/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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