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벚꽃이 흩날릴 무렵이 되면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다. 처음에는 무슨 제목이 이럴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작품을 보고 또 보게 되면 그 의미가 좀 더 마음속에 새겨진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인 초속 5Cm..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일 수도 있다. 정확히 꽃잎이 날리는 속도를 잰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찰라의 속도는 사랑하는 두 연인에게 있어서는 둘만의 약속. 그리고 영원한 의미를 가진다. 영원이란 동시에 순간인 것.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순간은 영원이고 영원은 곧 순간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설레고 또 애틋하다. 이 이상의 다른 표현이 있을까 모르겠다. 사랑을 하면서 겪는 행복한 시간이 많았을까 애틋한 시간이 많았을까 도돌이켜 보면 나는 후자가 아닐까 싶다.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또 둘이 한곳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평범한 우리네 인간의 삶에서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킨다는 것은 삶 자체의 목표가 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혼자서 세상과 맞서는 일은 역시나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곁에서 손을 꼭 잡아 힘이 되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삶의 길은 물론 상대의 삶의 길도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바탕이 된다. 사랑에 있어서는 힘겨움은 서로 나누어야 한다. 고통도 함께 해야 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으리라...


서로를 서로가 존재하는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그 사랑은 진실이 되고 비록 다른 길을 걷게 되어 다시는 마주칠 수 없더라도 영원이 된다. 아마도 세상이 끝나는 날 가장 사랑했던 이를 떠올려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사람은 정말 짧은 바람처럼 스쳐갔던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에 있어 함께 한 시간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까닭이다. 

그 사람이 단지 그 사람이기에 내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그 사람 자체가 전부인 것. 누구나 사랑을 이야기할 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을 실제로 지키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상의 편견과 그 편견에 물든 혹은 물들어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후에야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다.


사랑이 변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 애초에 사랑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사람이 변할 뿐일까?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할 수 없이 헤어진다는 말이 정말 맞는 이야기일까?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 감정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자신이 변할 뿐이다. 그리고 변해버린 자신이 어색하고 참을 수 없기에 사랑이 변한다는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당신은 분명 잘 지내고 있을 거에요"라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변해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움에 혹은 허전함에 누군가 다른 이를 만나게 되고 그것을 또 사랑이라 부르고 그 관계에 열중해보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미 사라진 어느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앞에 내가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와 과거의 누군가가 여전히 겹쳐 보이지만 그 겹침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면 정작 어느 기억이 자신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었는지조차 망각해버리게 된다. 우리네 삶은 그렇게 겹침 속의 망각이 반복되는 셈이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익숙해져간다. 내가 그렇듯 그녀가 그렇듯...

"마음은 1Cm 정도 밖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는 대사는 그렇게 이루어진 공허한 사랑이 결국 각자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서로에 대한 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오랜 물리적인 시간을 함께 보냈을지라도 마음의 거리는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그 짧은 거리만큼도 다가서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공허한 사랑조차 사랑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쓸쓸할까?


이 작품의 부제 '그들의 거리에 관한 짧은 연작'은 

벚꽃이 비처럼 내리는 아직은 이른 봄날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가

눈이 비처럼 내리는 어느 겨울날 내 마음 속으로 잦아들었다.


기억의 순서는 시간의 순서가 아닌 추억이 깊이에 따라 정해진다.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누군가와의 추억..그것이 가장 소중했던 그리고 평생 가장 소중한 순수한 사랑이다.



어제, 꿈을 꿨다

아주 옛날 꿈…

그 꿈 속에서는우리는 아직 13살로…

그곳은 온통 눈으로뒤덮인 넓은 정원으로

인가의 불빛은한참 멀리 보일 뿐으로…

뒤 돌아본 깊게 쌓인 눈에는우리가 걸어온 발자국 밖에 없었다


- 그렇게

- 언젠가 다시


함께 벚꽃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도, 그도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초속 5Cm, 사랑의 거리에 관한 짧은 기억"



겨울왕국(Frozen).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는 나지만 솔로가 된 이후 극장을 찾는 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영화 정보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음원 사이트에서 1위곡인 "Let it go"를 듣게 되었고 그날로 극장문을 두드리게 만들었고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지금도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자니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이라면 나중에 이 글을 읽으시기를...

먼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의 한 장면인 엘사가 주제곡을 부르는 장면을 보고 가도록 하자. 워낙 많이 알려진 노래기는 하지만 뮤직비디오 자체가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끌어왔기 때문에 그 자체가 스포일러기도 하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적당한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가 큰 부분인지라 디즈니에서 전략적으로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특히나 중간에 엘사가 머리를 풀고 옷을 바꿔 입을 때는 소름이 돋는 느낌마저 있었으니...

이 장면에서 가슴 한 구석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있었는데 아직도 감수성이 이리 예민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나는 일이 종종 있었기는 했었는데 연애를 끝내고 나서는 그런 감정도 메말라버린 줄 알았다. 아무튼 다시 예전의 감정으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 이 장면은 엔딩 부분과 함께 제법 여운이 오래 갈 장면이기도 하다. 

가사 자체가 이 영화의 주제와 긴밀한 연관이 되어 있어서 가사를 옮겨 온다. 영문 자체가 상당히 쉬운 편이어서 그냥 편하게 읽어 나가면 된다. 영화를 보고난 후 이 가사를 다시 읽어보자. "어? 줄거리가 그냥 다 들어있네?"라고 느껴질 테니까...


이 작품 하나를 놓고 보면 쓸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디즈니 이야기를 시작하면 스티브 잡스까지 이어지고 주제곡 이야기를 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원작격인 안데르센의 이야기도 펼쳐 볼 수 있겠고... 하지만 이미 수 많은 비슷비슷한 영화평들과 분석(?)들이 나와있는 지금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상만을 충실하게 적어나가는 것이 영화를 본 후의 본연의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디즈니에서 만든 작품이니 당연히(?) 공주가 등장한다. 그러면 왕자가 등장할까? 물론 등장한다. 대신 역할은 예전의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사랑 이야기. 물론 등장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핵심 역시 사랑이야기다. 아, 그러면 역시 공주와 왕자의 사랑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밝혀진다.

내가 왜 이 글의 제목을 사랑의 원초적 의미라고 적었는가 하면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통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작은 가족이다. 요즘 나는 사랑의 정의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기까지는 아직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그 둘이 아이를 낳았을 때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다. 비로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작은 가족..그것이 내가 다다른 결론이다.

'겨울왕국'은 우연인지 내 그런 생각에 잘 어울리는 이갸기를 풀어갔고 아마도 그래서 여러 혹평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겨울왕국의 사랑이야기는 흔한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가족의 사랑이야기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닫힌 문 너머로 내 던진 언니(스스로 원해서가 아님에도)와 그 언니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 오기 위한 동생의 이야기다. 

솔직히 디즈니에서 이런 내용을 줄거리를 만들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김 빠진 엔딩이라고 혹평을 받는 마지막 장면이 오기 전까지도 나 역시 예상을 하지 못 했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내 기준에서는 이런흐름이 크게 어색하지 않았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 주고 싶은지 잘 이해가 갔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물론 어떤 주제에 대해서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는 남자와 자신을 내치기만 하는 언니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안나는 언니를 위해 목숨을 내 놓는다. 위기에 처한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은 아예 생각조차 않고 뛰어드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수 세기에 걸쳐 수 많은 이야기와 노래와 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고 지금도 사람들이 늘 갈구하는 대상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갈 수록 약해져 가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요즘 겨울왕국의 이야기는 분명 남달리 보였을 것은 분명하다. 영화 내내 강조되는 "진정한 사랑"을 디즈니는 가족간의 그것으로 결론 지은 셈이다. 

아무튼 디즈니는 전형적인 자신들의 작품 패턴을 깨버렸다. 그동안 별 부담없이 받아들여지던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공주'에 대한 비판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열광적인 환호를 얻었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지금 세계는 가족에 대한 사랑에 목이 말라 있고 즉흥적인 사랑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상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니 그저 필자의 의견이라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 비중은 엘사보다는 안나 쪽이 아닐까 싶지만 두 사람 모두 공동 주연이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겠다. 사랑은 일방적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인물의 표정 연기는 대단했다. 대사에 딱딱 어울리는 섬세한 표정연기 특히나 여주인공들의 눈썹 연기(?)에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대사의 여러 부분을 노래로 처리한 점은 이 작품 이후의 뮤지컬 상연까지 고려한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장면은 레미제라블의 패러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말이다. 

디즈니 작품답게 그래픽은 역시 화려하다. 거기에 기존의 전통적인 공주가 아닌 현대적인 분위기의 두 공주의 묘사도 잘 되어 있다. 다른 곳의 리뷰를 읽어보니 공주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요즘 사용하는 현대 영어라고 한다. 아마도 덕분에 좀 더 관객의 공감을 많이 얻지 않았을까?  블루레이 버전이 나오면 한 번 구해서 보는 것도 극장에서 잡아내지 못한 그래픽의 세세한 부분을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작품의 팬이 되기로 했다면 소장해보는 것도 좋겠다. 

등장 인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야기 전개도 상당히 빠른 편이어서 -물론 약간 지루하거나 끼워 맞춘 듯한 줄거리도 있었지만- 10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화려한 그래픽과 마음을 울리는 음악들 그리고 예상을 깨는 결말은 겨울왕국이 말그대로 대박 흥행을 내는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라푼젤 이후 -겨울왕국에는 라푼젤이 등장하기도 한다. 눈썰미가 빠른 분들은 이미 찾아내셨을지도- 다시 한 번 디즈니의 저력을 보여준 겨울왕국. 아직 보시지 않은 분이라면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극장에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가족과 함께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혼자 가서 보더라도 어색하지 않다. 

여담 :

디즈니는 벌써 겨울왕국을 주제로 한 게임앱을 출시해서 성황리에(?) 매출을 올리고 있다. 게임 내에서 주인공들의 3D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고 게임 자체가 어렵지 않고 재미있어서 할 만은 한테 인앱 결제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은 주의하자. :) 이 외에도 겨울왕국 관련해서는 국내외 각종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으니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http://www.superbwallpapers.com/ 에서 빌려온 것인데 방문하면 아주 큰 사이즈의 바탕화면을 구할 수도 있다. :)


신카이 마코토는 내가 꽤나 좋아하는 감독이자 프로듀서다. 흔히 그에 대해 영상미가 뛰어나다거나 대사가 매력적(혹은 난해하다)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번에 개봉된 작품인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은 그 두 가지를 한데 어우러지게 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어'의 사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들은 해당 언어의 원어로 보고 듣는 것이 가장 좋은데 워낙 뜬구름 잡기식으로 공부한 일본어인지라 듣기는 엉망이어서 꽤나 고생이었다. 혹 의미의 해석이 어색하다면 전적으로 내 탓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언어'라는 단어에 쓰인 한자인데 아마도 언어라면 언어(言語)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言の葉이라고 적고 있다는 점.



이 작품이 주요 시간적 배경은 여름이다.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 비오는 날 시작되고 비오는 날 끝이 난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언어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비는 아마도 기다림과 설렘 사랑과 아픔 등 여러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전작인 초속 5cm에서 펼쳐졌던 영상미는 언어의 정원에서 극치를 보인다. 마치 사실주의 화가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 생겨나는 것일까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 '아주 우연히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 익숙해지다보니 자연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익숙함이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인지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랑'은 영원한 인간의 주제가 아닐까. 


신카이 마코토는 '언어의 정원'에서 조금은 특별한 사랑을 다룬다. 하긴 이전에 그가 다룬 작품들도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거부감(?)이 들지도 모를 그런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편견이 아닐까? 나이나 사회적인 신분 혹은 그외의 배경들은 어차피 눈에 보이는 형식일 뿐은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이유가 딱히 달린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생각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비 내리는 어느 초여름날 우연이라면 우연하게 시작된 이 만남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사랑 이전의 사랑이야기를 먼저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 써 내려감이 잠시 멈춰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갈피를 찾지 못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 그 이야기를 마저 써 내려간다.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란 불완전함과 불안전함이 만나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기에...


모든 사랑이 아무런 역경없이 행복하기만 할 리는 없다. 아니 어쩌면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보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더 많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그 힘겨움을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지켜내겠다는 다짐과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과정 속에는 오해도 갈등도 있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사랑에 독이 되는 것도 없다.


사랑은 행복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 행복한 순간에 이르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 끝에 서로를 마주 보고 섰을 때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난 어느 날 우연히 만나 그날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믿지 않는다. 설령 그렇게 시작되더라도 지속되기는 어렵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끝에 시작된 사랑도 때로는 너무나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에...


흔히 '너를 위해 떠나겠다'든지 '당신에게는 내가 부족해', '더 좋은 사람 만나' 라든지 하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이런 말은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만 줄뿐이다. 왜 스스로 선택한 사랑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가.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라면 상대에 대한 약속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일까. 물론 그 순간순간에 이런 것들을 생각할만큼 이성적이지는 못한 것이 또 우리네 사람이니 그토록 많은 만남과 이별이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끝내 그 순간을 이겨낸다면 그것으로 사랑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의 날들은 그렇게 이겨내고 버텨내야 하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시간만으로 가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삶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그렇지가 않은 법. 결국 사랑이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세상과 맞서 이겨내는 순간순간들의 기록이 아닐까.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기 전보다 왜 마음이 더 아플까를 묻지만 그게 정상이다.


오랜만에 진득하게 앉아서 본 작품이었다. 상영시간은 1시간이 채 안 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생각하기에는 충분했다. 워낙 감독이 영상과 단어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까닭에 장면장면에 꽤 신경을 써야했고 안 들리는 일본어에 귀를 세우고 있느라 피로도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내게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을 몇 편 보고 간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싶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게 뭐야?'라는 인상을 줄 지도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나면 이후의 이야기들이 짧게 펼쳐지는데 여주인공 유키노가 보낸 편지의 날짜가 내년 2월인 점이 재밌다. 비오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보니 여름만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에는 가을이 여자 주인공의 이름에는 겨울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편지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따뜻한 계절' 즉 봄까지 포함하면 4계절이 모두 들어있는 셈이다. 봄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그래서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손글씨로 안부를 묻는다는 설정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고전 문학 선생인 유키노가 일본의 고대 문학 작품집인 '만엽집'에 실린 작품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여러 곳에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문장을 옮겨 오기보다 의미만 적어 보면 먼저 

"멀리서 천둥 소리가 들리고 구름이 낀 것을 보니 비가 올 것 같다. 비가 오면 당신을 잡아둘 수 있을텐데.."라고 말을 건네고  이에 대해

"천둥 소리가 작게 들리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나는 여기에 머무르겠습니다. 당신이 그러기를 바란다면.."이라고 답을 한다. 

꽤나 낭만적인 문답인데 이 대사가 오고 가는 장면이 제법 처리가 멋드러진 탓인지 '아, 멋진 대사를 하고 있군'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 두 대사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 나뉘어져 등장하고 천둥과 구름 그리고 비는 여러 곳에서 복선으로 등장하는데 작품 전체의 줄거리와 이들의 관련을 연결해서 보는 것도 좀 더 작품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 번만 보고 여러 복선들을 맞추기는 아무래도 어려워보인다.

"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라는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스파이더맨?' 이 영화를 보러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만화 아닌가? 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 너무 유치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니 우리가 열광하던 트랜스포머나 배트맨, 슈퍼맨 등과 스파이더맨을 차별할 이유는 없었다. 의미심장한 매트릭스도 결국 만화다.

이번에 제작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대해서는 참 많은 평들이 있다. 많은 평들이 '이전 작'과의 대비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감독의 역량에 따라 작품이 그 근본부터 달라지기 때문이지 싶다. 그리고 많은 감상평들이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작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번에 본 스파이더맨이 유일무이한 스파이더맨이니 오히려 편견이 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영화의 흐름은 무난했다. 끝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한된 시간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으려다보니 각각이 하나의 영화가 되어도 될만한 줄거리들이 짧게 스쳐가버렸다는 점이다. 감독 입장에서 전작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어느 하나 가벼운 것이 없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도 후속편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가장 반가웠던 것은 마틴 쉰이다. 지옥의 묵시록을 본 이라면 마틴 쉰이 얼마나 강렬한 이미지인지 그리고 연기가 뛰어난지 알텐데 이 영화에서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다만 분장의 힘을 빌어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그를 털털한 어느 동네의 할아버지로 만든점은 어쩐지 서글펐달까... 하긴 지옥의 묵시록은 벌써 30년이 넘은 영화다.

다루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어느 이야기가 가장 비중이 클까. 위의 포스터를 고른 이유기도 하다. 영웅물을 애정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나는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영웅의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영웅이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기꺼이 그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연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약자에 대해서도 같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아이를 달래기 위해 스파이더맨은 가면을 벗어 아이에게 건넨다. 이것으로 이 영화의 주제는 명확해진다. '영웅은 없고 인간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랑이 곳곳에서 잘 묘사되고 있어 거미줄이 몸에서 나가네 기계에서 나가네 같은 논쟁은 이미 내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영화를 볼 때는 그냥 그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장면에 집중하면 된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니 누구에게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장면장면을 분석하며 따져가는 것은 평론가들에게 필요할지는 몰라도 관객에게는 영화를 보는 데 있어 장애가 될 뿐이다. 

내겐 오히려 이런 영웅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정의의 승리와 전지전능한 주인공보다 인간적인 주인공, 어설픈 정의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밝지만 어설픈 주인공의 모습은 그런 생각을 더 굳힌다. 세계평화와 인류의 구원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감추고 고독한 영웅을 삶을 살아가는 다른 영웅들보다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더 인간적인 스파이더맨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영웅을 쉽게 비난한다. 영웅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올리고 싶어하는 속성 때문이다. 그점은 영화 안에서도 마찬가지고 영화평을 쓰는 이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감독은 이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영웅을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고 가장 비난을 쏟아 붓던 연인의 아버지가 딸을 그에게 부탁하는 장면은 영웅도 사람일 뿐이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제 극장에서 내려갈 때가 다 되어서 그런지 극장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간간히 연인들이 보이고 홀로 온 몇몇의 사람들이 전부였다. 프로메테우스의 열풍이 한 번 세차게 휩쓸고 지나갔지만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던 점은 리들리 스콧과 에일리언 뿐이었다. 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와 토론들을 미리 읽지 않은 것은 감독 이름과 에일리언이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제법 많은 편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역시 고정관념을 떨칠 수는 없었고 리들리 스콧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장면장면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장면은 왜 등장했을까?' 이런 생각이 영화를 보는 것을 상당히 방해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흐름은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는 제목에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불을 선사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혹은 아직도 치르고 있을)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은 왜 지어진 것일까. 그리고 위에 보이는 영화 포스터 중간에 써 있는 다분히 중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저 문장이 이 영화의 주제일까?

결론적으로 어떠한 해답도 영화를 보는 동안 찾아낼 수는 없었다. 리들리 스콧이 어떤 의도를 했건 해석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장면들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되돌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깔려 있는 복선들이나 상징이 워낙 많아서 좀처럼 '이것은 이래서 이렇다'라는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의 리들리 스콧의 작품들과의 단절이 필요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적당한 킬링 타임용 SF물로 변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SF물로 보기에는 액션성(액션을 할만한 주인공도 없었다)이 우수한 것도 아니고 흔한 러브라인(일부러 끊어버리는 의도가 눈에 보일 정도)도 없다. 그래픽 기술이 좋긴 하지만 최대한 끌어올린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재미도 별로 없고 뚜렷한 주제도 없는 맹탕같은 영화였을까...

화면에 비춘 장면들만을 놓고 보면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의 전부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느 존재인가가 인류를 만들어냈고 인류는 그 존재를 찾아나서게 된다는 것. 이것이면 충분했다. 우리 인간은 인류가 생긴 이래 이 질문을 해 왔고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질문. 철학과 과학에도 등장하고 신학이나 문학에도 등장하고 누구라도 한 번쯤 생각해봤을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이 이 영화의 주제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당연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누구나 다 아는 그리고 아무도 풀지 못 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 리들리 스콧은 이 영화를 만든 셈이다.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블레이드 러너 역시 내 해석은 동일하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와도 뭔가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풀리지 않을 의문을 다시 확인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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