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밑창이 가로로 죽 갈라졌다. 두 번째다. 5년만에 밑창이 두 번이나 갈라졌으니 열심히 구두를 신고 다닌 까닭이리라. 밑창은 더 이상 쓸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가죽은 멀쩡하니 매장으로 가 수리를 부탁했다. 점원은 한참 구두를 들여다보더니 밑창을 교체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고 더 이상은 불가능하단다. 비용이 5만 원이 드니 잘 생각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일전에 밑창을 교체한 비용까지 하면 조금 더 보태어 구두 한 켤레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나는 수리를 맡겼다. 새 구두를 신어보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것을 쉽게 버릴 수 없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지나 내 손에 들어온 구두는 밑창이 이렇게 변해있었다. 겨울에 대비하라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정든 녀석을 되살렸으니 그것으로 됐다. 이번 밑창마저 갈라져버리면 그때는 정말 이 녀석과 이별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동네 구두방에서 뭔가 조치가 가능할 수도 있기를 바래본다.

우리네 구두는 보통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진 밑창을 쓰는데 이 소재는 잘 쓰면 3년 그렇지 않으면 2년이면 수명이 다 한단다. 다른 소재를 쓴다면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물어보니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아쉬운 부분이다. 

언젠가부터 주변에 오래 두고 진득하니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좋은 녀석을 하나 장만해 10년 아니 그 이상을 곁에 두고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말이다. 

가만히 내가 가진 것들을 뒤젹여보니 9년이 넘은 카메라가방과 8년이 조금 넘은 시계가 그나마 오래된 것이고 어지간한 것들은 비교적 최근의 물건이다. 일상의 진득함을 물건에서 찾는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낡고 손때 묻은 물건에 남아있는 한 사람의 삶을 느끼기 어려워지는 분위기는 분명 아쉬운 일이다.

항상 내 곁에서 내가 무슨 일이라도 하려할 때 가장 먼저 내 손에 들려지는 그런 물건은 이미 나 자신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은 세상의 경제적인 가치로 측정할 수 없는 그런 존재다. 가능하면 그런 물건들을 많이 남기고 싶은데 무소유와는 거리가 먼 이런 생각이 드는 걸보면 나도 한참 멀었구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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