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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6 19:52 - Snowroad snowroad

"초속 5Cm, 사랑의 거리에 관한 짧은 기억"


봄이 오고 벚꽃이 흩날릴 무렵이 되면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다. 처음에는 무슨 제목이 이럴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작품을 보고 또 보게 되면 그 의미가 좀 더 마음속에 새겨진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인 초속 5Cm..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일 수도 있다. 정확히 꽃잎이 날리는 속도를 잰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찰라의 속도는 사랑하는 두 연인에게 있어서는 둘만의 약속. 그리고 영원한 의미를 가진다. 영원이란 동시에 순간인 것.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순간은 영원이고 영원은 곧 순간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설레고 또 애틋하다. 이 이상의 다른 표현이 있을까 모르겠다. 사랑을 하면서 겪는 행복한 시간이 많았을까 애틋한 시간이 많았을까 도돌이켜 보면 나는 후자가 아닐까 싶다.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또 둘이 한곳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평범한 우리네 인간의 삶에서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킨다는 것은 삶 자체의 목표가 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혼자서 세상과 맞서는 일은 역시나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곁에서 손을 꼭 잡아 힘이 되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삶의 길은 물론 상대의 삶의 길도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바탕이 된다. 사랑에 있어서는 힘겨움은 서로 나누어야 한다. 고통도 함께 해야 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으리라...


서로를 서로가 존재하는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그 사랑은 진실이 되고 비록 다른 길을 걷게 되어 다시는 마주칠 수 없더라도 영원이 된다. 아마도 세상이 끝나는 날 가장 사랑했던 이를 떠올려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사람은 정말 짧은 바람처럼 스쳐갔던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에 있어 함께 한 시간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까닭이다. 

그 사람이 단지 그 사람이기에 내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그 사람 자체가 전부인 것. 누구나 사랑을 이야기할 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을 실제로 지키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상의 편견과 그 편견에 물든 혹은 물들어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후에야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다.


사랑이 변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 애초에 사랑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사람이 변할 뿐일까?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할 수 없이 헤어진다는 말이 정말 맞는 이야기일까?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 감정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자신이 변할 뿐이다. 그리고 변해버린 자신이 어색하고 참을 수 없기에 사랑이 변한다는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당신은 분명 잘 지내고 있을 거에요"라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변해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움에 혹은 허전함에 누군가 다른 이를 만나게 되고 그것을 또 사랑이라 부르고 그 관계에 열중해보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미 사라진 어느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앞에 내가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와 과거의 누군가가 여전히 겹쳐 보이지만 그 겹침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면 정작 어느 기억이 자신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었는지조차 망각해버리게 된다. 우리네 삶은 그렇게 겹침 속의 망각이 반복되는 셈이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익숙해져간다. 내가 그렇듯 그녀가 그렇듯...

"마음은 1Cm 정도 밖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는 대사는 그렇게 이루어진 공허한 사랑이 결국 각자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서로에 대한 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오랜 물리적인 시간을 함께 보냈을지라도 마음의 거리는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그 짧은 거리만큼도 다가서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공허한 사랑조차 사랑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쓸쓸할까?


이 작품의 부제 '그들의 거리에 관한 짧은 연작'은 

벚꽃이 비처럼 내리는 아직은 이른 봄날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가

눈이 비처럼 내리는 어느 겨울날 내 마음 속으로 잦아들었다.


기억의 순서는 시간의 순서가 아닌 추억이 깊이에 따라 정해진다.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누군가와의 추억..그것이 가장 소중했던 그리고 평생 가장 소중한 순수한 사랑이다.



어제, 꿈을 꿨다

아주 옛날 꿈…

그 꿈 속에서는우리는 아직 13살로…

그곳은 온통 눈으로뒤덮인 넓은 정원으로

인가의 불빛은한참 멀리 보일 뿐으로…

뒤 돌아본 깊게 쌓인 눈에는우리가 걸어온 발자국 밖에 없었다


- 그렇게

- 언젠가 다시


함께 벚꽃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도, 그도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초속 5Cm, 사랑의 거리에 관한 짧은 기억"



  1. 2014.04.07 09:00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4.09 19:29 신고

      봄은 워낙에 빨리 지나가는 계절인지라 초속이 오히려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참 제목을 잘 지었어요. 흔히 초라고 하면 찰나의 빠름을 생각하기 쉽지만..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라면 그런 느낌은 들지 않거든요

  2. Favicon of https://tangbisuda.tistory.com BlogIcon 롤랑존 2014.04.07 09:11 신고

    감동적인 문구도 많고 눈길님만의 문체도 보이고 오늘 기사 좋습니다.
    무엇보다 만연필 장면에서 눈길님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사랑은 사랑이야'라는 개리쉬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좀 엉뚱하죠? ^^;;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4.09 19:30 신고

      만년필은 요즘 1회용 프레피 라는 녀석을 주로 씁니다. ^^ 잉크를 담아 쓰는 녀석들은 책상 구석에서 고이 잠자고 있네요. 펜을 들어 무엇인가를 쓸만큼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요즘은 도통 생기지 않아서인가 봅니다.

      음..사랑은 사랑이야..네 맞지 않을까요? 사랑이 사랑이지 거기에 더 무엇인가를 붙여서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없을 테니까요 ^^

  3. 2014.04.07 14:52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4.09 19:32 신고

      저런..이 작품과 무슨 사연이 있으시군요. 살아가는 동안 그렇게 아련하고 또 애틋한 감정을 누군가와 나눈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전 생각이 듭니다. 비록 그 사람이 지금의 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더라도 말이죠.. 돌아보면 저도 아득하네요. 그런 기억이..

  4. Favicon of http://photopark.tistory.com BlogIcon skypark박상순 2014.04.09 22:18 신고

    꼭 한번 보고 싶은 작품이네요.
    깊은 감성으로 올려주신 글은 정말 인상적이고 감동 입니다.
    아주 잘 보았습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4.14 18:46 신고

      에고 과찬의 말씀을..^^;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다보니..자주 보게 되네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은 좀 챙겨두는 편입니다.

  5. Favicon of http://hansik07.tistory.com BlogIcon Hansik's Drink 2014.04.10 12:44 신고

    잘 알아 간답니다 ^^
    챙겨보고 싶어지는군요~!

  6. Favicon of http://rosinhav.tistory.com BlogIcon 로지나 Rosinha 2014.04.10 17:18 신고

    아아아 ㅠㅠ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정말 좋아하고요.
    보고있으면 마음이 너무 먹먹하죠.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OST,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도 애절 그 자체..
    봄이 오니, 저도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

    ps. 저 로지나에요 ㅎㅎ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4.14 18:48 신고

      아하! 본명으로 돌아오셨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먹먹한 느낌..그래요 그런 느낌이 이 작품이 주는 느낌 중에 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음악도 그렇고요. 쓸쓸하지 않은 사랑이 되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은 게 또 우리 삶이죠

  7. Favicon of http://zomzom.tistory.com BlogIcon 좀좀이 2014.04.12 02:11 신고

    나중에 구해서 보아야겠군요. 왠지 잔잔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요.
    기억의 순서는 추억의 깊이에 따라...참 와닿는 말이네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4.14 18:49 신고

      네, 제가 꽤나 좋아하는 문구인데..어디가 출처였는지 잊었어요 ^^;
      정말 살다보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일어났던 시기랑은 전혀 관계가 없더군요

  8. 마문이 2014.04.27 03:33 신고

    남자의 첫사랑이 이런것이다 라고 설명하는 애니같아서 볼때마다 가슴한켠에 고임 모셔두었던 무언가가 꼬물꼬물 거리네요 봄만 되면 이애니를 보게 되네요 ㅎ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4.27 22:03 신고

      네..남자의 첫사랑은 그렇게 기억에 남는 모양입니다. 저도 늘 봄이 되면 떠오르는 작품이고 올해도 어김없이 보게되었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9. 라임 2014.05.01 22:56 신고

    이러면 안되지만... 정말 솔직히 허무했어요.. 노래도 좋고 영상미도 엄청났지만.
    결말이 제가원하던것이 아니였어요 ㅠㅠ. 여자쪽에서 남자친구 생겼다고 편지를 끊어버렸을떄
    솔직히 맘에 안들고 욕하고싶더라고요... 물론 첫사랑의 기억이라는 영화지만..
    전 어쩔수없나봅니다 ㅠ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5.03 21:48 신고

      어느 쪽이 최선이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가슴 속에 묻어둔 사랑이 최선일까요. 새로이 시작하는 사랑이 최선일까요.. 이미 다른 길을 걷게 된 관계에서..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에요. 당연한 감정이신 거 같아요..

  10. 플라토닉 2014.05.13 16:54 신고

    애니 검색중 우연히 방문하다 글 남기고 가네요..
    작성한 글때문에 더 보고싶어지네요~
    공감가는 글 잘보고갑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5.15 08:11 신고

      네..아직 봄이 다 가지 않았으니 이 봄이 가기 전에 보시면 좀 더 느낌이 남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1. 2014.05.15 15:41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5.16 10:49 신고

      그러네요. 벚꽃이 흩날리던 시기에 보셨다면 좀 더 감정이입이 되셨을텐데요.. 아니면 늦은 저녁에 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이 작품과 최근 언어의 정원(이것도 제가 리뷰를 적긴 했어요) 두 작품을 추천해봅니다. 이전 작들은 그림체가 아마 적응이 잘 안 되실 거에요

  12. 2014.05.26 15:29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5.26 23:18 신고

      신카이 감독 작품이 대개 그런 느낌을 많이 주는 거 같더군요. 보는 내내 뭔가 가슴을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 오래 전 나에게도 있었던 어떤 일을 떠오르게 하는 듯한 느낌..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

  13. 2014.06.10 13:52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5.30 22:51 신고

      ㅎㅎ 그런가요? 추억이라..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지나간 과거는 그 시간 속에 묻어두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

  14. 2014.06.11 15:37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6.14 19:49 신고

      아마도 사람 자체에 대한 기억은 없지 않으실까요? 우리 기억이란 사람보다는 장면 그리고 느낌 자체에 대한 기억이 주를 이루니까요..

  15. BlogIcon 오현욱 2014.12.14 11:48 신고

    공감되는 글...
    잘 읽고갑니다~~
    저두 이 애니...꼭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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