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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30 10:30 - Snowroad snowroad

기억이 머무는 곳을 따라 걸으며

오래된 사진 폴더를 뒤적이다보면 미처 지우지 못한 기억들을 담고 있는 사진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조금은 소심한 일이겠지만 이별을 하고 나면 그 사람과의 기억이 담긴 사진은 모두 삭제를 하는데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대개 사진을 많이 찍는 데다가 여기저기 백업본을 만들어두다보면 온전히 지우지 않고 남아있는 폴더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지우지만 장소가 남아있는 사진은 한동안 들여다본다. 사람은 잊을 수 있지만 장소는 잊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우리의 기억이란 특정한 장소에 남겨진다. 그리고 그 장소에 남아있는 기억 속의 우리는 10년 전이건 20년 전이건 혹은 다른 어떤 시기건 그때의 우리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세월이 지나 백발이 되어 그 장소를 다시 찾더라도 그곳의 우리는 10대의 혹은 20대의 젊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그곳을 찾은 우리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남겨진 기억 속의 나를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이미지들이 주는 평온함이나 행복감이 아닐까 싶다. 이제 세월이 지나 떠나간 이의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지만 함께 걷던 길을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를 오늘도 여전히 걷거나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연인의 경우만이 아니라 가족 혹은 반려동물과의 기억도 다르지 않다. 고향을 떠난 이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 장소가 반드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무의식 중에도 특정한 장소를 피해 돌아가곤 하는데 이것 역시 장소가 우리에게 남겨둔 기억 때문이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 장소에는 여전히 우리의 모습이 남아있으니까... 그 모습과 마주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가능하면 어떤 장소에 남아있는 기억들은 좋은 것이길 바란다. 

사람이 기억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되새기지 않고 어떤 장소나 어떤 사물에 의지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어쩌면 그만큼 각별한 마음이 희미해져간다는 의미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져가며 추억을 되새길 일은 아니지 않을까? 우연이건 혹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건 그래도 좋은 기억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가 이전의 행복했던 모습을 떠 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너무 복잡하게 너무 어렵게 혹은 너무 이성적으로 살 일은 아니다. 삶이란 그리 길지 않고 그 삶 속에서 만나는 많은 인연들과의 기억은 나라는 사람의 삶 자체기 때문이다.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어디건 자신에게 좋은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를 한 번 찾아가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과거에 연연하고 미련을 못 버리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과 마주해보는 일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1. 2013.12.30 11:26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1.01 19:09 신고

      비우고 비워도 화수분처럼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채울 것이 많이 줄었어요. 그만큼 욕심이 없어졌달까요. 앞으로도 계속 줄여나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2. Favicon of http://ahla.tistory.com/ BlogIcon 아톰양 2013.12.30 12:51 신고

    오늘 내일은 행복했던 올해 기억과 마주하며
    차분히 마무리 해야겠네요 :]

  3. Favicon of http://photobit.tistory.com BlogIcon 사진공간 2013.12.30 13:16 신고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
    음, 아쉽게도 딱 떠오르는 공간이 없어요. 이거 슬퍼해야할 일이군요.
    최근에는 좀 생겼습니다. 제 과거의 공간은 그런 의미인가 봅니다. ㅠㅜ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1.01 19:11 신고

      한편으로는 그런 과거가 없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오히려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장소들이 미래의 어느 날 돌아봤을 때 가장 멋진고 행복한 장소로 남을 수 있도록..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

  4. Favicon of http://photopark.tistory.com BlogIcon skypark 2013.12.30 22:05 신고

    추억이라는것이 모두 아름다운것은 아니지만
    사진으로 남은 흔적을 따라서 회고하고 그 기억과 마주하는것도
    큰 의미가 있을것 같아요.
    그러면서 우리가 한걸음 더 성숙한 삶의 길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1.01 19:12 신고

      기억과 마주하는 일..
      그 일을 이제는 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좋지 않은 기억이라고 외면하는 것은 삶의 일부를 외면하겠다는 말과도 같지 않나 싶어서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

  5. 모르세 2014.01.01 22:57 신고

    오랜만에 잘보고 갑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6. Favicon of http://zomzom.tistory.com/ BlogIcon 좀좀이 2014.01.02 02:49 신고

    사람은 지워져가고 장면만 남는 것 아닐까요...그래서 그곳에 가면 과거의 일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장소들이 변해가면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드는 것 같구요 ㅎㅎ;;
    snowroad님, 2014년에도 깊은 글 읽으러 종종 놀러오도록 할게요. 2014년에는 행복한 일 가득하시기 바래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1.02 17:53 신고

      네 그렇지요..사람은 지워지고 장면만 남아있는 것..
      사람의 얼굴은 흐려져서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재생이 되지요..^^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7. Favicon of http://minitrip.tistory.com BlogIcon minitrip 2014.01.04 21:25 신고

    저 사진도 기억 속에 어떤 순간에 멈춰 있는 곳이겠군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바뀌어도 장소는 그보다 앞서는 것 같더라구요.

  8. Favicon of http://diaryofgrinder.tistory.com BlogIcon SAS 2014.01.06 19:25 신고

    순간순간의 절단면만을 현재로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2차원으로 각인된 과거의 이미지는 3차원 입체영상보다 훨씬 리얼하게 느껴집니다. ^^

    사진은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1.10 06:23 신고

      네 영상보다 저도 2차원적인 사진에 의미를 좀 더 부여하는 편인데요.. 아마도 사진을 오래 해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동영상에 취미가 있었다면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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