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일간의 투병생활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삼우재까지 마치고 며칠이 지난 지금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느낌은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싶다. 암이라는 것이 당사자에게 어느 정도의 고통을 주는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지만 사람이 가고 남은 자리에 서 있는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심적인 고통도 물리적인 고통 못지 않으리라 조심스레 추측만 해 본다.

부자간에 정이 그다지 각별하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우리 가족의 기억은 세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어쨌건 아버지가 떠난 이후 우리 세 식구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 가족들 모르게 이용한 카드빚이 제일 크게 다가온다. 참 모순된 것이 아닌가. 고인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을 떠올리며 애틋함을 느껴야 그것이 가족일텐데 당장 빚걱정으로 머릿속이 온통 복잡하니 말이다.

나도 동생도 아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래서인지 그렇게 정겹다거나 하는 것들은 거의 없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밀려든 아버지의 빚갚기에 두 형제가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고 그렇게 보낸 세월만 거의 10년이 넘는데...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자식들에게 그 부담을 남겨주고 있으니 부모자식간에 이처럼 얄궂은 관계는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동생이나 나나 그저 애틋한 것은 남아 계신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손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렇게 힘든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에게 떠난 후에도 여전히 마음의 상처를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 가슴이 쓰리다. 이젠 나와 동생이 어머니의 양손을 잡고 걷겠지만 그동안의 힘겨웠던 어머니의 삶은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떠난 사람은 홀가분하게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잊겠지만 남아 있을 이들에게 그래도 추억으로 되새겨질 수 있는...그런 삶을 살아야하지 않았을까 하고 아버지를 원망해본다. 물론 이제사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애틋함으로 그리움으로 아버지를 기억할 수 없음은 끝내 아쉬울 따름이다.


'사진 이야기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황  (6) 2013.06.21
일상으로 한 걸음  (10) 2013.05.03
12월의 시작, 다시 가방을 꾸리며  (18) 2012.12.01
뿌연 일상 속에 잠시 머물러 보다  (26) 2012.11.09
벌써 2년 그리고 특별함에 대하여  (12) 2012.11.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