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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9 23:29 - Snowroad snowroad

펠리칸 M250. 만년필이 전해 주는 이야기

나는 손글씨를 즐기는 편인데 아마 어려서 어머니께서 억지로(?) 글씨 연습을 시킨 것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손으로 글을 쓰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고 오히려 가능하면 손으로 무언가 쓰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에 연필 관련 글을 쓰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오래 써온 필기구는 만년필이다. 한때는 만년필 동호회에서 맹활약(?)을 하며 온갖 종류의 만년필을 두루 섭렵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내 손에 남아있는 만년필은 현재 2자루다. 몽블랑의 P146과 펠리칸의 M250 이 두 펜은 일기나 뭔가 심각한 글을 쓸 때 사용한다. 라미의 비스타도 있지만 이 펜은 일상용이랄까 그런 용도로 사용한다. 덧붙여 플래티넘의 1회용 만년필인 프레피도 있는데 이 만년필은 워낙 소모성이 강해서 별도로 분류하기는 애매하지 싶다.


펠리칸의 만년필은 참 종류가 많은데 역시 숫자로 등급을 정하고 있다. 250이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200시리즈 중 하나라는 의미다. 이전에 M205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배럴(만년필의 몸통)과 캡 등에 크롬이나 백금(또는 은) 도금이 되어 있을 때 5을 뒤에 붙인다. M250은 펠리컨의 표준형 만년필로 생각하면 된다. 100시리즈도 있지만 성인 남성이 쓰기에는 조금 작은 편이고 200급으로 올라가면 길이가 어느 정도 적당하다 싶은 느낌이 든다. M200과 이 녀석의 차이는 촉이 금도금이냐의 여부이고 나머지는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아쉽게도 M250은 이제 단종이 되었다고 한다.


펠리컨이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 만년필을 만든 독일의 회사 이름이자 로고다. 시대에 따라 캡과 촉에 새겨지는 아기새의 모양과 숫자가 달라지는데 오래 전 모델의 경우 아기새가 두 마리고 요즘 모델은 한 마리다. M250의 경우 현재 단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비교적 현대 모델인지라 한 마리의 아기새가 보인다. 이전에 꽤 오래 사용했던 M150은 새가 두 마리였다. 가끔 내 손에 익을대로 익은 그 녀석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요즘은 이 녀석에 정을 붙여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래 촉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기새가 두 마리 있는 게 보인다.


M250은 14K금도금이 되어 있는데 금도금 촉(닙)의 경우 부드러운 것이 장점이라 하지만 이것도 제품마다 워낙 편차가 커서 딱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촉 아래 적혀 있는 EF란 Extra Fine의 약자로 아주 얇다는 의미지만 유럽 제품들이 그렇듯이 아주 가늘지는 않다. 그래도 펠리컨 제품은 비교적 가는 편이고 한글이나 한자를 적기에 크게 어려움은 없다. 더 얇은 촉은 일본 제품인 세일러나 플래티넘 것이 있다. 금촉의 특징이라면 스테인리스 촉에 비해 서걱거리는 느낌이 적고 대신 미끄러지는 느낌이 강하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이 느낌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만 종이에 펜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더 좋은 내게 금촉은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펠리컨의 만년필은 배럴 안에 잉크를 넣는 방식이다. 플런저 방식이라고 하는데 사람에 따라 편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촉 채로 잉크병에 담근 다음 잉크를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남아 있는 잉크의 양은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약간 투명한 창을 통해 알 수 있다. 펠리컨 제품은 통상 다른 제품에 비해 잉크가 많이 들어가 고시용 만년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내게 남은 만년필은 모두 이런 방식이다. 잉크를 넣기 위해 어느 정도 수고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녀석들인데 내게는 그것이 더 정겹다.

펠리컨이라는 이름은 클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저 클립을 자세히 보면 눈도 달려 있다. 펠리컨의 머리 모양을 표현한 것인데 제조사별로 자신들이 내놓은 제품의 고유한 특징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몽블랑의 하얀별처럼 펠리컨은 저 클립을 통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뭐랄까 저 모양이 그리 근사해보인다고는 말하기 어렵겠다. 이것도 사람 취향이기는 하지만...


내게 남은 두 개의 만년필이다. 왼쪽의 몽블랑은 촉이 화려하고 펠리컨은 수수하다. 두 펜 모두 이리듐(펜촉 끝부분을 구성하는 금속)도 쌩쌩하고 아마 죽기 전까지 써도 저 두 펜 모두 닳게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두 펜 모두 소장용이 아닌 순수한 필기용이다. 만년필을 소장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두 촉 모두 EF지만 글을 써 보면 몽블랑이 펠리컨의 두 배 정도는 굵다. 

요즘은 전자문서가 보편화되어 만년필을 들고 결재란에 서명을 할 일도 없어졌다. 그런 면에서 만년필이 그나마 대중적으로 쓸모가 있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필름 카메라가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듯이 만년필도 이제는 필기구가 아닌 소장용 수집품 대열에 끼는 것 같아 아쉬운 느낌이다. 이 녀석들을 한참 보다가 방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박스를 열어본다. 작은 상자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잉크들과 노트들... 역시 난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인가보다.

어찌 되었건 이 두 펜은 남은 내 인생을 함께 할 펜들이다. 내 손에 온 지 이제 3년이 조금 지났으니 이전에 사용하던 M150의 세월을 채우려면 10년도 더 넘는 시간을 글을 써야 한다. 이 녀석들이 적어 나갈 앞으로의 나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그리고 세월이 지나 빛바랜 잉크로 적혀 있는 그 글들을 다시 읽게 되는 날의 내 마음은 어떨까...

내년 정도에는 필름 카메라를 다시 들여볼까 생각을 해 본다. 사진에 가장 푹 빠져 지내던 시절 항상 내 손을 떠나지 않던 니콘의 F3와 F5를 다시 내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다. 이젠 흑백필름이나 슬라이드를 현상해 주는 곳도 거의 없어졌지만...


  1. Favicon of http://mindeater.tistory.com BlogIcon MindEater 2012.12.10 09:00 신고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아날로그는 머물기 어렵죠.. 제가 그래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2.12 07:55 신고

      아니에요..아이들 키우시잖아요..가장 아날로그적인 것을 하고 계신거에요 ^^.. 아이들은 디지털로는 키울 수가 없다고 전 생각해요

    • Favicon of http://mindeater.tistory.com BlogIcon MindEater 2012.12.12 08:47 신고

      ㅠㅠ 댓글에 감동 먹었습니다. snowraod님의 생각을 살짝 훔쳐갑니다. ^^*

  2. 2012.12.10 09:46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2.12 07:55 신고

      네 정말 편지에는 그런 느낌이 강하죠. 하나의 획을 긋는데도 많은 생각이 필요하고..

      붓글씨는 정말 권해드리고 싶네요. 저도 펜글씨 정도 배운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해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네요. ^^

  3. Favicon of http://photopark.tistory.com BlogIcon skypark 2012.12.10 10:43 신고

    그러고 보니 만년필 본지도 오래되었네요.
    저에게는 만년필도, 필카도, 다 추억이 되어버렸는데... 부럽습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2.12 07:56 신고

      어쩌면 지난 추억의 끈을 그렇게라도 잡고 싶은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필카와 만년필 종이 그런 것들 말이죠..

  4. Favicon of http://wbona.tistory.com BlogIcon NOT FOUND 2012.12.10 19:30 신고

    손글씨를 써 본지 너무 오래되었네요.
    저는 몽블랑을 소장용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5. Favicon of http://zomzom.tistory.com/ BlogIcon 좀좀이 2012.12.11 06:54 신고

    아주 어렸을 때 낡은 만년필로 글자 적어보던 게 생각나네요. 그때는 만년필로 글자 쓰는 게 너무 멋있게 느껴져서 나이 먹으면 꼭 돈 벌어서 만년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정작 나이 먹으니 만년필은 고사하고 매일 글을 볼펜으로 무성의하게 휙휙 갈겨쓰게 되네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2.12 07:57 신고

      만년필도 프레피같은 것은 2천원인가 해요. 필기감도 아주 좋구요. 굳이 비싼 것 사실 필요없어요. 다 비슷하거든요 ^^ 프레피 한번 써보세요. 아주 좋아요

  6. Favicon of http://life-lineup.tistory.com BlogIcon +요롱이+ 2012.12.11 12:34 신고

    멋진 만년필이네요..^^
    그러고 보니.. 손으로 글씨를 써본지 시간이 꽤 흘렀는 듯 해요..!!

  7. Favicon of http://iamdevivre.tistory.com BlogIcon 롤패 2012.12.12 09:31 신고

    향수가 느끼지는 글이군요. ^^
    만년필은 콜라병과 같은 나무에 촉 하나 끼어있는 녀석을 사용해봤습니다. 잉크병에 넣어서 잉크가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가 쓰고 다시 잉크 채우고 말이죠. 제 기억이 맞나 모르겠습니다. ^^;;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2.12 18:48 신고

      그것은 딥펜이라는 녀석이지요. 저도 제법 딥펜 촉이 많은데 나중에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사실 그 펜이 더 운치가 있고 쓰는 맛이 있지요 ^^

  8. 침묵 2012.12.19 13:12 신고

    저와 같은 펜을 사용하시는군요.
    처음에는 라미사파리(챠콜)을 사용하다가 두번째로 영입했던게 m250입니다.
    본래 구형 m600닙 디자인이었다고 하더군요. 오래된 디자인임에도 단순하면서도 날렵한 느낌을주지요(선 두개를 넣었을 뿐인데;; )
    지금은 중저가로 계속 영입해서 라미2000, 델타 시크릿, 크로스 타운젠트, 파커180 등 을 더 영입했는데 막상 다 써보니 m250이 제일 편하더군요.
    물론 굵기를 다르게 해서 구입해 왔던터라 잘 활용하면 될것 같습니다만 한 자루만 남기라고 하면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한 m250이 되겠네요.

    카메라 역시 니콘, 우연히 들어왔다가 뭔가 강한 동료애(?)가 느껴지네요^^;;
    (전에 F4s를 사용 했었고 기념삼아 보급형 니콘필카 하나는 남겨놓고 필카는 가끔 중형카메라를 사용합니다. 참, 그리고 현재 디지털 주력기는 D300s구요)
    하지만 필카구입은 다시 한번 고려해 보세요. 필름생활 7년 이상했는데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필름값, 현상값이 예전에 비하면 말도 안되는...)
    다만 끝물에 작별인사하듯 마지막으로 다시 써보시겠다는 생각이시라면 그것도 괜찮겠지요.

    간혹 들르겠습니다. 즐거운 연말 되세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2.20 18:03 신고

      그러시군요..저는 첫펜이 150이었습니다. ^^ 한때 만년필에 꽤나 심취해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별별 펜들을 다 사용해봤지만 결국 남은 것은 위의 두개네요. 250은 실사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고.. 146은 뭔가 상징적인 거랄까요...힘든 시기라 하시면 아마도 고시 준비를 하셨나 봅니다..

      카메라는 저는 캐논으로 시작을 했지만 워낙 어렸을 때였고.. 사회에 나온 이후 다시 잡은 것이 니콘의 F3이었지요. 필름카메라의 매력은 뭐라 말할 수가 없지만 슬라이드 현상 맡기고 충무로 밥집에서 먹는 백반이 제일이었달까요..^^ 지금은 D700으로 건너왔고 렌즈도 단렌즈 2개만 사용 중이네요..

      필름이 그렇게 어려워졌군요. 하긴 한롤 가격도 만만치 않아졌는데..요즘 충무로는 어떤가 모르겠습니다.

      여러가지 말씀 감사드립니다. ^^

  9. bunny 2013.09.26 00:12 신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두 라미 차콜로 시작해서 m215를 썼었는데 윗분이랑 여러모로 비슷하네요.
    제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서 고시용 펜을 알아보던 중인데
    악필인데다 손에 힘이 많이 없어 괜찮은 만년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사각거리는 느낌말고 좀더 부드럽고 잘나가는 느낌의 만년필은 뭐가 있을까요??
    혹시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셨던 필기감이 부드러운 만년필 모델이나 답안지에 적당한 흐름 좋은 잉크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3.09.27 11:58 신고

      펠리칸이 좋은 이유가 잉크가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 무엇보다 큽니다. 2차시험 답안지 작성의 경우 적은 시간에 상당히 많은 양의 글을 빠르게 써야 하기 때문에 잉크양에 신경 쓰지 않고 쓸 수 있는 펠리칸이 여러모로 유리하죠.. 펜을 써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초반부터 부드러운 펜은 거의 없습니다. 고가 제품들 중에는 있지만 수험용으로는 부적당하죠.. M250이 금촉이기 때문에 그나마 부드럽고요.. 항상 그 펜으로만 필기하는 연습을 하셔서 펜촉의 마모가 적당히 이루어지도록 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 굵기는 EF촉으로 하시고요..

  10. dfd 2016.01.29 15:44 신고

    플린저가 아니고 피스톤아닌가요?

  11. dfd 2016.01.29 15:45 신고

    플린저가 아니고 피스톤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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