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무더위에 어디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카메라를 짊어지고 나갔다면 고통은 배가 된다. 똑딱이라면 어찌어찌 버텨보겠지만 SLR에 렌즈까지 마운트하고 돌아다니는 것. 특히 도시 한 가운데를 다니는 것은 상당한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도시의 삶의 모습들을 잡아봐야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집을 나서지만 대개는 흐르는 땀과 오른손에 느껴지는 무게의 압박때문에 쉽사리 카메라를 들어 무언가를 찍어야겠다는 '의지'가 솟아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면 보통 '내가 직업 사진가도 아니고..'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오늘은 그냥 구경이나 하자'며 적당한 타협을 하곤 한다.

그래도 아예 사진을 찍지 않자니 뭔가 어색해 조리개를 조여 놓고 노파인더 촬영을 하겠다고 폼을 잡고 카메라를 아무렇게나 휘휘 돌리며 거리를 쏘다닌다. 이러면 애초의 원대한 목표에 대한 부담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기분에 따라 셔터버튼을 꾹꾹 눌러대는 고양이 촬영을 하게 된다. 구도며 초점이며 그런 것들은 멀리 사라지고 어려운 말로 Candid Photo라며 혼자 으쓱해한다.

가끔 운이 좋으면 그래도 수평이 맞은 사진을 담을 수도 있는데 아마 내가 매그넘의 어느 저명한 사진작가였다면 여러가지 이유를 붙여 대단한 작품일 수도 있는 사진들을 건지게 된다. 물론 나는 그네들이 아니기때문에 쉽게 이야기하면 '망작'이 탄생하게 된다. 허나 미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지는 알 수 없지 않냐? 며 나름 사진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집에 돌아와 메모리카드로부터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고 났을 때 도저히 눈을 뜨고 볼 만한 사진이 없어서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도 본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그렇다. 오늘의 사진은 아방가르드였던 것이다. 구도니 초점이니 하니 번잡한 요소들은 작품에 있어 아무런 가치를 주지 않는 것이다. 마치 행위예술처럼 마음가는대로 카메라를 돌리다가 어느 순간 잡힌 장면..그것이야말로 시대의 순간의 포착이며 진정한 삶의 현장이 아닌가! 라며 흡족해 한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Nikon D300, AF NIkkor 35mm f2.0D


+ Recent posts